레밍의 습성에 날개를 달자
레밍의 습성에 날개를 달자
  • 제주신보
  • 승인 201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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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주 수필가

레밍(lemming)은 쥣과에 속하는 포유류로, ‘나그네쥐’라고도 한다. 주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서식하는데, 무리가 불어나게 되면 집단으로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습성이 있다.

‘레밍 딜레마’라는 작품은 이런 쥐의 습성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창작 우화다. 레밍들은 왜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걸까. 그 행동은 본능적일 수도 있고, 문화적일 수도 있다고 한다. 절벽 아래는 바위들이 험준하게 솟아 있지만 레밍들은 휘파람을 불며 바람에 나부끼듯 몸을 던진다. 그곳에 더 좋은 세상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원하는 세상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무심코 따라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욕하다가 닮고, 흉내 내다가 닮는다는 말을 한다. 반복적인 행위가 익숙해지면 그것이 굳어져 문화로 형성된다고 했던가. 얼마 전, 한 방송에서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의 18세 소녀 ‘알 쿠눈 구출작전’이 소개됐다. 그녀는 자신의 나라 사우디의 현실에서 스스로 벗어나고자 망명을 시도했다. 거부할 수 없는 강제 결혼과 남성 보호자의 허락 없이는 여행조차 맘대로 할 수 없는 문화에 대한 반감.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던 그녀는 가족과 함께 여행하던 중 공항에서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곧 보안 담당에게 붙잡혀 공항에 억류되고 말았다.

다시 사우디로 송환될 위기에 처하자 알 쿠눈은 SNS를 통해 전 세계로 상황을 알리고 도와 달라 호소했다. 메시지를 본 사람들은 그녀에게 용기를 주기 시작했다. 아랍어로 된 메시지를 영어로 번역해 주는 사람, 위험하고 긴박한 상황을 많은 이들에게 공유해 주는 사람, 누군가는 그녀의 망명을 승인하라는 압력을 넣기도 했다. 수만 명의 사람들과 국제단체의 적극적 도움으로 캐나다에서는 난민 수용을 허락했고 그녀는 무사히 망명길에 올랐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자유를 찾고자 했던 한 여성의 용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이 되었다. “누구든 당신의 날개를 부러뜨리게 놔두지 마세요. 당신은 자유로워요. 권리를 찾으세요.” 그녀의 말은 메아리가 되어 세계 곳곳에서 억압 받고 차별 받는 이들의 심장에 불을 지폈다.

빙상계의 한 여자 선수가 코치에게 당한 성폭행 피해 사실을 폭로하면서 또 한 번 사회적 이슈가 됐다. 아이스링크 위를 달리던 그녀는 자신과 같은 아픔을 후배들이 겪지 않기를 바란다며 정의의 깃발을 들었다. 더 이상 선수 생활을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자신의 선택을 놓고 얼마나 고민했을지. 동트기 전의 새벽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하지만 어둑새벽 속에서도 희망의 활을 쏘아 여명이 밝아 오길 기다렸다. 신문이나 인터넷으로 소식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빼곡하게 댓글을 달아 주었다. 괜찮다고 참 잘했다고.

인간의 권리를 빼앗고 평등을 짓밟는 부패의 껍데기를 누군가는 깨야 한다. 깰 수 있어야 한다.

사우디의 한 소녀도, 체육계의 한 여자 선수도 부패한 알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자유와 권리를 찾으라는 외침은 나를 바꾸고 사회의 문제를 파헤쳤다. 더 이상 절벽으로 뛰어 내리는 어리석은 레밍이 아니다. 희망을 향해 손을 흔들고 도와 달라고 소리칠 줄 아는 현명한 레밍들이다. 자유의 문을 두드린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희망의 날개를 펴고 더 멀리 더 높게 날아 자유롭게 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