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연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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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전애 변호사/논설위원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한다. 기쁜 일은 타인에게 얘기하기 쉽지만, 슬픈 일은 얘기조차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슬픔은 연대가 필요하다.

필자는 제주지방변호사회 국제이사로, 얼마 전 다른 변호사들과 함께 일본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필자는 오키나와 방문이 처음이었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제주와 닮아 있는 느낌이었다. 따뜻한 기후, 본토보다 여유로워 보이는 삶의 모습 등이 그랬다. 그리고 마지막 날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한 뒤에는 섬으로서 슬픔의 연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오키나와는 일본에 편입된 지 47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전에는 ‘류큐국’이라는 작은 섬나라였다. 이 작은 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큰 시련을 맞이 한다. 미국과 일본이 오키나와 남부를 중심으로 큰 전투를 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오키나와 주민 10만명이 희생되었다. 당시에는 오키나와뿐만 아니라 조선 역시 일본국으로 분류되어 있었기에 오키나와가 함락되고 조금 더 지나면 제주가 다음 대규모 전쟁터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제주는 제2차 세계대전은 피할 수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4·3을 겪으며 전쟁과는 다른 형태의 대규모 희생이 발생하였다.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은 격렬했던 전투가 일어났던 바로 그 장소에 건물을 세웠다. 기념관 1층 일부 유리바닥으로 조성해 놓은 곳은 아직도 그 지하에 포탄들이 박혀있는 것이 보인다. 전쟁 중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곳에는 주민들이 동굴에 숨어들어가 살았던 모습들이 있다. 제주가 겹쳐 보이지 않을 수 없다.

평화기념공원에는 한국인위령탑도 세워져 있었다. 당시 조선에서 징집되어 온 젊은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왜 조선의 젊은이가 오키나와에 끌려와 이곳에서 죽어야 하고, 유해조차 아직도 찾지 못해 죽어서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가. 그 억울한 죽음의 슬픔 앞에서 우리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오키나와 전투가 있은 지 74년 그리고 제주 4·3은 71년이 되었다. 희생자, 아직 그 기억을 가지고 살아계신 분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에게는 경험해보지 못한 자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을 고통의 시간들로 결코 짧지 않았을 것이다.

제주의 4·3평화공원과 오키나와의 평화기념공원 모두 드넓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리하고 있다. 건물에서 외부를 나오면 순간적으로 멍할 정도의 장관이 펼쳐지는 곳들이다. 이 압도적인 자연 속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며 또 죽을 만큼 미워했다는 것이 얼마나 작고 부질없는 일인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누군가 억울하게 죽어도 그리고 그 슬픔이 아무리 켜켜이 쌓여도 자연은 있는 그대로 포용해줄 뿐이고 또 시간은 그렇게 묵묵히 흘러간다. 묵묵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우리 대로 함께 힘차게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다. 제대로 된 사과를 받고 그 피해를 금전적으로나마 보상받는 당연한 절차와 함께, 우리가 공동체로서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할 ‘우리’는 4·3유족들 그리고 제주도민을 넘어선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지키기 위해 슬픔의 연대를 통하여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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