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빛 미소에 숨이 막힌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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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신례리 왕벚나무 자생지(上)
5·16도로를 달리다 수악교를 지나 150m 가면 만날 수 있어
제주시 봉개동 왕벚나무 자생지와 더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2019 바람난장이 시작됐다. 올해 첫 바람난장을 펼친 장소는 신례리 왕벚나무 자생지. 제주에서는 신례리 왕벚나무 자생지와 봉개동 왕벚나무 자생지 두 장소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2019 바람난장이 시작됐다. 올해 첫 바람난장을 펼친 장소는 신례리 왕벚나무 자생지. 제주에서는 신례리 왕벚나무 자생지와 봉개동 왕벚나무 자생지 두 장소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날이 좋았다. 사월 날씨는 워낙 변덕스럽지만 올해 첫 바람난장을 펼치는 첫 주말은 따사로운 봄 그자체였다. 바야흐로 절정에 다다른 벚꽃은 가는 길마다 숨이 막힐 지경이다. 누가 토해낸 그리움인지 눈이 시리고 심장은 파닥거려 달뜬 기분이다. 그 그리움의 근원지 왕벚나무 자생지를 찾아가는 길이다. 신례리 왕벚나무 자생지는 5.16도로를 달리다 수악교를 지나 150m쯤 가면 만날 수 있다. 숲으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고요하지만 바람에 몸을 맡기는 나무의 심장소리가 들린다. 왕벚나무는 그렇게 분홍빛 웃음을 머금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라수목원 원장인 양영환 박사가 왕벚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펼쳤다. 왕벚나무는 프랑스 에밀 타케 신부가 1908년 한라산 관음사 해발 600m 부근에서 처음 발견해 표본을 채집했다.
한라수목원 원장인 양영환 박사가 왕벚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펼쳤다. 왕벚나무는 프랑스 에밀 타케 신부가 1908년 한라산 관음사 해발 600m 부근에서 처음 발견해 표본을 채집했다.

바람난장 사월의 첫 문은 한라수목원 원장이신 양영환 박사의 왕벚나무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대부분 일본이 왕벚나무 자생지로 알고 있지만 잘못된 정보이다. 제주의 하논성당 주임이었던 프랑스 출신 에밀 요셉 타케 신부가 1908414일 한라산 관음사 해발 600m부근에서 자생하는 왕벚나무 표본을 처음으로 채집했으며, 그 후 1911년 일본 선교사에게 왕벚나무가 보내져 그 답례로 일본의 미장온주밀감나무 14그루를 받았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 제주도는 신례리 왕벚나무 자생지와 봉개동 왕벚나무 자생지 두 곳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열흘 붉은 꽃 없다지만 왕벚꽃은 해마다 가슴으로 피어 저물지 않을 것이다.

은은한 플룻의 선율이 바람을 타고 바람난장 가족들에게 속삭였다.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 새소리와 바람소리 나무가 함께 연주하고 화답했다.
은은한 플룻의 선율이 바람을 타고 바람난장 가족들에게 속삭였다.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 새소리와 바람소리 나무가 함께 연주하고 화답했다.

바람소리였는지 나뭇잎의 속삭임인지 맑고 은은한 선율이 흐른다. 김수연님의 플루트 연주포레 시칠리엔느의 G. Faure Sicilienne op. 78번 곡이 숲을 채우고 있었다. 자연합일 혹은 물아일체의 순간이다. 새소리와 바람소리와 나무가 함께 연주하고 화답하는 숲의 아리아. 드라마 황진이의 삽입곡 꽃날과 클라이슬러의 아름다운 로즈마린이 봄바람을 불어넣는다. 사람들 입가엔 따사로운 봄이 가득 묻어 있다. 내가 꿈을 꾸는지 왕벚꽃이 꿈을 꾸는지. 호접몽(胡蝶夢)이 아니라 화접몽(花蝶夢)이다.

벚꽃나무의 황홀함에 취하는 것도 잠시 잔인한 달 사월의 기억이 우리를 붙든다. 아직 잊혀지지 않은, 영원히 잊혀져서는 안 될 4.3의 아픔을 더듬는다. 문순자 시인의 ‘4.3 그 다음날의 기억을 시낭송가 김정희님이 애절하게 읊조린다.

밤새

난바다가

지켜낸 외등 하나

 

왕벚나무 그늘 아래 비린내로 나앉아

 

낱낱이

옥돔 비늘을

훑어내고 있었다

-문순자, ‘4·3 그 다음날전문.

왕벚나무 꽃잎에서 옥돔의 비린내를 맡는 시인. 아름다움조차 꽃멀미를 앓을 수밖에 없는 4.3의 기억들. 처절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사월 그리고 봄. 찬란한 울음이라는 아이러니로 이 봄을 건너야 한다. 피고 지는 일 그 또한 찰나이겠지만.

황경수, 김영곤의 성악 듀엣. 그들이 완성한 남촌과 유년시절의 기행은 봄의 하모니를 완성했다.
황경수, 김영곤의 성악 듀엣. 그들이 완성한 남촌과 유년시절의 기행은 봄의 하모니를 완성했다.

성악가 황경수, 김영곤님이 부른 남촌과 유년시절의 기행으로 봄의 하모니를 완성했다. 눈을 감고 들으면 그때 그 시절 추억들이 꽃잎처럼 살포시 이마에 내려앉는다. 심연까지 파고드는 저릿한 바리톤과 테너의 감성이 봄의 폐부를 찌른다. 심장 가까이 다다른 연민의 숲에서 어제는 하늘을 나는 아름다운 꿈을 꾸었다고.

바람난장이 끝날 무렵 왕벚나무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언제부터 앉아서 우리를 지켜봤는지 모른다. 누군가의 기억이 잠시 앉았다 간 흔적인지도 모른다. 꽃그늘 아래가 환하디 환하다.

사회=정민자
미술=유창훈
무용=박소연
플루트=김수연
성악=황경수·김영곤
색소폰=장유석
시낭송=김정희와 시놀이
사진=허영숙
영상=김성수
음악감독=이상철
음악반주=김정숙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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