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소방차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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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재난 하면 물과 불이 떠오른다. 몇 년 전 동일본을 휩쓴 쓰나미는 물이었다. 바다에서 불쑥 기둥으로 일어나 달려든 물 폭탄은 한순간에 세상을 집어삼켰다. 집이 무너지고 도로가 뒤집히고 사람들이 땅속에 묻혔다. 참혹했다.

물 못잖은 게 화마(火魔)다. 산불은 요사스러운 귀신처럼 산을 내려 인간세상을 할퀸다. 바람을 업은 산불은 무섭다. 숲을 태우고 건물을 허물고 차와 도로를 덮쳐 세상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린다.

일주일 전에 일어났던 강원도 산불은 최악의 사태였다. 축구장 740개에 해당하는 면적이 잿더미가 돼 버렸다. 고성에서 발화한 불은 삽시에 속초·강릉·동해·인제로, 경계를 허물며 동시다발적으로 번졌다. 세찬 바람을 안은 불길이 마치 회오리처럼 허공을 날았다. 비화(飛火)한 것이다. 귀로나 듣던 말이다. 양양과 간성 사이를 부는 바람, 양간지풍이 무섭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건조해져 산불을 만나면 화풍(火風)이 된다는 것이다. 바람을 타고 불길이 치솟아 대형 산불로 무섭게 타올랐고, 화마 앞에 사람들은 참으로 무력했다.

하지만 이번 산불엔 나라 안이 함께 재빨리 일어나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54대의 헬기와 1만8000여 인력 투입으로 진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지상의 진화작업에 발맞춰 공중에 헬기가 떠 입체적 합동작전을 편 게 눈길을 끌었다. 군 장병도, 경찰도 진화를 위한 총력전에 가세해 적극적으로 도왔다.

“여생을 마치려던 집인데 하늘에서 불덩이가 떨어졌다.” 77세 노인이 망연자실 안절부절못해 하고 있었다. 강원도민들의 아픈 눈물이었다. 불똥이 눈처럼 내렸다 한다. 사흘 동안 산불이 휩쓸고 간 자리는 잿더미로 덮여 말 그대로 폐허였다. 끔찍했다. 일부 주민들이 “집 잃고 숟가락 하나 못 건졌다.” “도둑이면 집이라도 남길 것인데, 산불이 도둑보다, 전쟁보다 무섭다”고 토로했다.

와중에, 온라인 커뮤니티에 뜬 영상이 눈길을 끌었다. 전국에서 몰려든 소방차가 뻘건 불빛으로 연잇는 색다른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속초로 향하는 영웅들’. 소방차 행렬은 장엄했다. 어둔 밤 시뻘건 경광등을 밝히고 줄지어 달리는 소방차들. 천릿길도 마다 않고 나선 용기와 투혼에 가슴 먹먹했다. 퍼뜩 스치는 생각, ‘이게 나라다.’

댓글이 이어졌다. ‘소방관들이 무사하기를 기원한다’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하자’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그들에게 보내는 격려의 육성이었다.

주유소 같은 화기에 취약한 시설물도 가리지 않고, 불을 막으려 폭발물 위험도 무릅쓰며 불길 속으로 뛰어든 소방관들. 그들에게서 감동 받았다는 글이 잇따랐다. 오랜만에 대하는 건강하고 신선한 댓글들이었다. 울림으로 왔다. 투덜대다가도 재난 앞에선 불끈 일어서는 우리다. 이 나라, 이 사회가 사람이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번엔 산불을 대하는 태도가 신속했다. 긴밀하면서 강경 단호했다. 초기에 발 빠르게 대응해 더 큰 재앙으로 가는 걸 막았다. 냉철히 때로는 세심하고 따뜻하게 현장을 지휘했다는 의미다. 현지에 가 주민들과 맨바닥에 앉아 손잡아 가며 아픔을 어루만지던 정부 요인들 손길도 따스했다.

더욱이 한밤중에 ‘속초로 향하던 영웅들의 행렬’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고난 앞에 팔 걷어붙이는 건 바로 사회와 국가를 지탱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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