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다크투어에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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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병 경제부장

최근 제주 여행의 트렌드 중 하나로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 떠오르고 있다. 다크투어는 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을 말한다.

전쟁·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하여 떠나는 여행을 일컫는 것으로 국어사전에는 우리말로 ‘역사교훈여행’이라고 다듬어져 있다.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용어는 1996년 국제문화유산연구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Heritage Studies)라는 잡지의 특별호에서 처음 사용됐고, 2000년 영국 스코틀랜드에 있는 글래스고 칼레도니언 대학의 맬컴 폴리 교수와 존 레넌 교수가 함께 지은 ‘Dark Tourism’이라는 책이 출간되면서 널리 쓰이게 됐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 400만명이 학살당했던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약 200만 명의 양민이 학살된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유적지, 원자폭탄 피해 유적지인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미국대폭발테러사건(9·11테러)이 발생했던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부지인 그라운드 제로 등이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다크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대표적인 지역으로 제주가 주목받고 있다. 제주에는 4·3평화공원을 비롯한 4·3 유적지, 일제 강점기 군사시설과 전적지 등 역사적인 장소들이 산재해 있다.

제주도 차원에서도 4·3 유적지 등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는 다크투어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다크 투어리즘 상품개발을 통해 제주의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함이다.

제주4·3과 맞물려 3월과 4월 제주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4·3 유적지를 방문하고 있다. 필자도 제주4·3 추념식을 앞둔 지난달 말 다른 지방에서 방문한 손님들과 함께 대정읍 상모리 섯알오름과 4·3 예비검속자 집단학살터, 알뜨르 비행장 등 4·3 유적지를 찾았었다.

참석자들은 제주의 아픈 역사를 직접 체험했고, 이를 통해 제주4·3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나아가 제주4·3의 완전한 해결, 화해와 상생의 의미를 되새겼다.

하지만 유적지 현장은 안타까운 상황이다. 예비검속자 집단학살터에 설치된 안내판은 누군가가 긁은 듯한 자국으로 안내판 내용을 제대로 읽을 수 없을 정도였다.

알뜨르 비행장 일본군 격납고의 벽면에는 방문객들이 남긴 낙서가 가득 차 있었다. 한 참여자는 낙서를 읽고서는 “우리 지역에서도 왔었네”라며 씁쓸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알뜨르 비행장 활주로 인근에는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잔뜩 쌓여 있었고,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통신시설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벙커를 오르내리는 계단은 상당수가 파손돼 걷기가 불안할 정도였다. 훼손된 4·3 유적지가 이곳뿐만은 아닐 것이다.

제주4·3을 이해해 달라고 다른 지방 손님들을 초청해 유적지를 방문했는데 역사의 현장은 훼손되고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부끄럽고 민망한 상황이었다.

지난해 제주4·3 70주년을 맞아 4·3을 전국화, 세계화시키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전개됐고, 제주4·3에 대한 인지도와 인식도 상당히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제주4·3의 전국화 세계화와 앞서 먼저 준비돼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제주가 준비되지 않고 다른 지방,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4·3에 대해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4·3 유적들은 제주의 아픈 역사를 알리는 한편 화해와 상생, 인권교육의 장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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