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와 국격
외교와 국격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함성중 논설위원

외교에서 의전은 매우 중시된다. 행사의 반이 의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전문적으론 ‘국제예양(禮讓)’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국가의 대표자에 대한 경칭, 회합 때의 좌석순 같은 것들이다. 이를 어기는 게 국제법 위반은 아니라 해도 국격의 실추를 면할 수 없다.

과잉의전 논란이 일지언정 나라마다 그토록 의전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상대국과의 외교에서 점수가 깎여선 안되기 때문이다. 개인 사이도 그렇거늘 국가간에 지켜야 할 예의를 어겨 상대국을 불쾌하게 만들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외교부는 뻑하면 국격 손상의 결례를 낳는 게 문제다. 자칫 사소한 실례가 회복이 어려운 외교 참사나 국제여론의 악화를 초래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현 정부의 외교 실책이 다채롭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지난주 한·스페인 첫 전략회의 자리에 꾸깃꾸깃 구겨진 태극기가 버젓이 걸렸다. 주름진 태극기를 보는 국민의 자존감도, 나라 품격도 바닥에 추락했다.

외교부의 의전 결례는 양손으로 꼽기도 모자란다. 체코를 26년 전 국명인 체코슬로바키아로 표기하고, 발트 3국을 발칸 3국이라고 부르는 오류를 저질렀다. 이를 손수 지적한 주한 라트비아 대사가 굉장히 불쾌해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청와대 의전팀도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서 대통령이 엘리베이터를 못 잡아 정상들의 기념촬영에 빠지게 만들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네시아 인사말을 하고 음주를 금기시하는 이슬람국가 브루나이에선 건배 제의를 하게 했다. 매번 기강해이를 이유로 들지만 실수가 잦으면 그게 실력으로 간주된다.

▲해외 국빈 방문에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그 나라의 국격을 보여 주는 상징성을 띤다. 의전을 통해 상대국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표할 수 있어서다. 그런 만큼 외교에서 국격은 국민의 자존심이 걸린 사안이다. 곧 국가 또는 구성원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신뢰와 품위를 의미한다. 그 가치가 충만하다면 품격 있는 국가이고 그것이 한 나라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이른 시일 내 오랜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외교라인으로 다시 봉합해야 하는 이유다. 실수 당사자 몇 명만 문책하고 넘어가면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될 건 자명하다. 주름진 태극기처럼 국격이 구겨지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외교부를 넘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야 할 이들이 적지 않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