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킨파크 조지프 한 "BTS, 아티스트로 존중…K팝 세계로 나가길"
린킨파크 조지프 한 "BTS, 아티스트로 존중…K팝 세계로 나가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체스터 베닝턴 그리워…린킨파크 사진전·새 앨범 준비 중"
"남북정상회담 지켜보며 깊은 감동…대화 이어지길"
세계적인 밴드 린킨파크의 조지프 한이 11일 마포구 상암동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계적인 밴드 린킨파크의 조지프 한이 11일 마포구 상암동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미국 밴드 린킨파크(LINKIN PARK)는 대중성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거머쥔 몇 안 되는 그룹이다.

1996년 데뷔 이래 '페인트'(Faint), '인 디 엔드'(In the end), ''(Numb)까지 메가 히트곡을 숱하게 냈고, 콧대 높기로 유명한 그래미어워즈에서 2002년과 2006년 두 차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무엇보다 린킨파크가 혁신적인 그룹으로 평가받는 건 한 장르에 머물지 않고 힙합 스타일 보컬과 DJ 도입, 뮤직비디오 자체 제작 등 변신을 거듭한 덕분이다.

그러나 한동안 세계 팬들은 린킨파크 활동을 볼 수 없었다. 20177월 보컬 체스터 베닝턴이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감했고, 그해 10월 열린 추모공연이 세상과의 마지막 소통이었다. 멤버들은 사건 1년이 지나서야 조금씩 솔로 활동을 재개했다.

뮤직비디오 감독이기도 한 한국계 미국인 멤버 조지프 한(Joseph Hahn·42)은 지난해 방탄소년단이 유명 DJ 스티브 아오키(Steve Aoki)와 함께 만든 싱글 '웨이스트 잇 온 미'(Waste it on me)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기도 했다.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에 심사위원으로 합류한 조지프 한을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인터뷰했다.

통통하던 볼살이 빠져 몰라보게 변한 그는 "제 한국어 수준이 딱 세 살 아이 정도니, 영어를 섞어 써도 이해해 달라"고 웃으며 말했다.

다음은 조지프 한과의 일문일답.'

-- 얼마만의 한국 방문인가.

한국에 자주 온다. 작년에도 왔었다. 제 뿌리인 한국은 정말 빨리 변하는 곳이고 모든 종류의 가능성과 기회가 있는 곳이다. 새로운 음악과 영화, 신기술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

-- 과거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비무장지대(DMZ)에 가보고 싶다고 했었다. 실제로 가봤나.

작년에 그 근처까지 갔다. 정확한 이름은 지금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임진강이었던 것 같다. 전망대에 올라가서 망원경으로 북쪽 산과 농장들,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북한에 늘 관심이 많다. 한국 사람들은 북한과 부대끼며 살아왔기에 덤덤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도 주변국과 분쟁에 익숙한 듯했다. 특정 지역에 산다 해서 두려운 일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어찌 됐건 삶은 계속된다. 언젠가 한반도에 긍정적인 미래가 도래하길 희망한다. 꼭 정치적인 문제를 말하는 게 아니다. 남북이 통일되든 아니든, 우리가 저편에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 이건 공평한 기회를 갖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나는 자유롭게 여행하고 TV로 재미있는 걸 볼 수 있지만, 저편에 사는 분들은 그런 선택권이 없지 않나.

-- 지난해 한반도에선 남북정상회담이 큰 이슈였다. 관련 보도를 봤나.

놀랍게도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던 날 나는 서울에 있었다. 우리 세대는 그런 종류의 대화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런 대화가 열리고, 양측이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만났다. 정말 담대한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 이제 린킨파크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다. 정말 힘들겠지만 고() 체스터 베닝턴이 떠난 뒤 어떻게 버텨왔는지 얘기해줄 수 있나.

그는 우리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가 그립다. 멤버들은 스스로와 가족들을 돌보고 있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헤쳐나가고 있다. 그리고이제 밴드는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 린킨파크가 컴백한다는 건가.

아마도 10년 뒤쯤? (웃음) 그보다 빠를 수도 있다. 다만 데드라인을 정해놓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는 그저 현재에 집중하고, 음악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세부적인 계획을 논의하고 있진 않다. 창고에서 음악을 만들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 새 음악을 만든다면 보컬 파트였던 체스터 빈자리는 누가 채우는 건가. 외부 영입이나 팀 내 다른 멤버가 부르는 것도 고려하나.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

-- 린킨파크 사진전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맞다. 우리 마지막 투어 때 나는 사진기를 들고 멤버들을 찍었다. 공연하다가 잠시 내 순서가 아닐 때면 재빨리 멤버들의 모습을 촬영했다. 마치 타임캡슐처럼. 이달 27일부터 53일까지 중국 베이징, 상하이 3개 도시에서 먼저 연다. 한국에서도 전시회를 하고 싶은데, 아직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 당신은 그래미어워즈 대중음악 부문에서 수상한 최초의 한국계 뮤지션이다. 지난 2K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시상자로 그래미 레드카펫을 밟는 걸 보고 어떤 기분이 들었나.

질투 났다 하하하. 재능 면에서나 작사·작곡 능력에서나 한국은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방탄소년단의 탄생은 세계에 한국이 이런 것도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사건이다. 방탄소년단은 세계를 향해 다른 차원에서 말할 수 있다. 나는 방탄소년단을 내 후배나 동생이 아닌 동급 아티스트로 존중한다. 그들은 자신만의 색깔을 찾은 팀이다.

방탄소년단이 해온 것처럼, 앞으로 좀 더 많은 K팝 그룹이 전 세계 팬들을 겨냥해 음악 활동을 하면 좋겠다. 영어나 다른 언어로 된 앨범을 내는 것도 방법이다. 라틴 음악을 예로 들어보자. 라틴 음악은 거대한 수용층을 등에 업고 주류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적으로 아시아 인구는 라틴 인구를 넘어선다. 아시아라고 못할 게 뭔가.

-- 방탄소년단의 '웨이스트 잇 온 미' 뮤직비디오 촬영은 어떻게 성사됐나.

방탄소년단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열심히 프로모션을 돌던 때가 있었다. 헝그리 정신이 돋보이던 시절이다. 방탄소년단 쇼케이스에 음악계 여러 유명한 사람이 갔는데, 마침 DJ 스티브 아오키의 매니저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 매니저가 스티브에게 방탄소년단을 소개했고, 스티브는 방탄소년단에게서 진실함을 봤다고 한다. 그래서 '마이크 드롭'부터 '웨이스트 잇 온 미'까지 협력하게 된 거다.

그런데 마침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터졌다. 엄청나게 흥행했다. 동양 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모멘텀이 된 사건이다. 스티브는 일본계 미국인이고 나는 한국계 미국인이지만 그런 걸 떠나서, 같은 아시안으로서 멋진 작품을 만들어보자 싶었다. 안타깝게도 방탄소년단은 그때 스케줄 상 뮤직비디오 촬영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국계 코미디언 켄 정(Ken Jung)을 비롯해 할리우드 아시아 배우들과 인플루언서들을 섭외했다. 아시아인들이 총출동하는 축제 같은 뮤직비디오가 됐다.'

-- 그러고 보면 당신은 DJ이자 미술가, 뮤직비디오 감독,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원동력이 뭔가.

사실 뮤지션이 되는 건 내 삶에서 우연한 해프닝이었다. 늘 음악을 사랑했지만 록밴드가 되거나 세계적인 DJ가 되는 걸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대학을 미술을 전공하기도 했고 늘 만화책과 일러스트레이션을 좋아했는데, 이런 것들이 나를 '비주얼 스토리텔러'로 이끌었다. 나는 때로는 시각을 통해, 때로는 청각을 통해 사고한다. 음악 활동이 비주얼 아트를 할 때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 '슈퍼밴드' 출연 이후 한국 활동 계획이 있나.

당연히 하고 싶다. 상업적인 활동은 크게 염두에 두지 않지만, 어떤 형태로든 기회가 생긴다면 피하지 않겠다. 오래전 린킨파크 멤버가 된 것도 내게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나아가고 싶다.' <연합뉴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