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 별도봉에서
단상(斷想), 별도봉에서
  • 제주신보
  • 승인 201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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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진 동화작가

뜨락에 봄이 내리니 동백꽃이 환장을 했나 보다. 겨우내 간간이 피기 시작하더니 4월 들어선 온 나무를 검붉은 색으로 물들여 놓았다. 동백이 지금 내 뜨락에 한창이다. 가장 검붉다고 느끼는 순간 속절없이 지고 마는 애절한 꽃이라니.

4·3 71주년 추념식에 다녀온 날 뜨락에 피고 지는 동백을 보고는 봄을 만나고 싶었다. 4·3영혼들을 만나고 와서일까? 곤을동 터무늬도 확인하고 싶어 늦은 오후 별다른 일정도 없는 터라 서둘러 별도봉 둘레길로 차를 몰았다.

중산간 마을에 사는 내가 봄을 찾아 해안가에 있는 별도봉을 찾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바다와 한라산에 내린 봄을 동시에 조망하는 장소로 이곳만한 곳도 없지 않을까?

우당도서관 근처 둘레길을 벗어나자 이내 바다와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한창 연초록 잎을 펼치고 있는 찔레나무 가지 위에 까치 한 마리 오도카니 앉아있다. 짝을 잃었나? 애처롭기 그지없다. 내 뜨락에 찾아와 거니는 녀석들과는 대조적이다. 이 화창한 봄날에 즐기는 고독이라니. 녀석을 방해할 생각은 없지만 자꾸 마음에 걸려 돌아보게 된다. 좀 더 오르자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구불구불 쌓아놓은 돌담만이 마을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욕심 부리지 않은 만큼의 작은 경계여서 일까? 해풍과 비바람에도 돌담들이 여태 무너지지 않았다. 잃어버린 마을 한남리 머체골에 있는 오승철 시인의 시 '터무니 있다'가 떠오른다. 일흔 해 비바람에도 삭지 않은 터무늬가 정말 여기도 뚜렷하다. 터무늬 없는(?) 일만 겪는 제주 백성들에게 뚜렷한 곤을동 터무늬는 무얼 말하려 함인가? 무장대 중 한명이 곤을동으로 피신했다는 이유로 기축(己丑)년 그 겨울 토벌대가 40여 채의 집을 불태우고 24명을 죽이는 국가폭력이라니.

곤을동 터무늬 남쪽에 나무 한그루가 당시를 말해 주듯 힘겹게 누워 있다. 바다 멀리 낚싯배 한 척이 봄 물살을 가르고 동쪽으로 원당봉이 위용을 들어내면 이내 넘실거리는 자동차 물결이 눈에 들어온다. 남쪽은 고층건물들이 이미 한라산 중턱까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퍼져 나가고 있다. 독버섯이 들판에 번지듯 산 아래 목초지를 덮고 있는 고층 건물들이라니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기축년 그 겨울 곤을동 참상을 묵묵히 지켜본 충격이련가? 홀로 말이 없는 한라산은 실루엣만 남기고 서서히 어둠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다. 한라산이 모습을 감춘 제주산야는 불빛 축제장을 방불케 하고 벚꽃이 지천으로 흩날리는 별도봉에 땅거미가 내린다. 정상에 다다르자 불빛을 하나 둘 밝히며 여객선이 뱃고동을 울린다. 여객선 근처에 있는 브이패스(v-pass)가 실루엣으로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제주로 오지 못한 304명 영혼들을 그리워함일까?

이내 싸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내려가라 함이다.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다시 세상 속으로 가서 최선을 다하며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기억하자. 어쩌면 이 말은 영원한 삶을 꿈꾸는 오만한 인간들에게 로마 개선장군이 내리는 채찍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이제 곧 봄은 갈 것이다. 봄이 가고 다시 계절이 바뀌면 별도봉 둘레길에도 꽃비가 내리고 곤을동 유채꽃도 내 뜨락에 동백도 다시 피고 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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