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거친 파도·바람에 맞선 제주人의 애환이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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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 고내리 포구…지역 주민들에게 소중한 삶의 터전, 접안시설 남아 있어 ‘옛 정취 간직’
귀덕2리 진질개 옛등대…원뿔 모양으로 쌓아진 방사탑 형태, 뱃사람 아내들 이곳서 무사귀환 빌어
귀덕2리 벵단원…용천수 ‘벵단이물’ 이름 딴 갯담, 원형 담 쌓아  물고기 떼 이동 막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에 위치한 고내리 포구. 현재 몇척의 어선만이 이용하고 있지만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어 도민과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에 위치한 고내리 포구. 현재 몇척의 어선만이 이용하고 있지만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어 도민과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4면이 바다인 섬 제주는 예로부터 바다와 더불어 살아왔다.

과거 척박한 섬 제주는 해안을 중심으로 마을들이 형성됐고 제주사람들은 고기잡이를 위해 바닷가 마을마다 포구(浦口)를 만들었다.

포구는 다른 지방과 제주를 잇는 교류와 소통, 억척스러운 삶이 담긴 공간이다.

이와 함께 옛등대와 갯담 등 어로 유적은 제주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들어 있는 유산이다.

포구와 갯담, 옛등대 등 제주의 어로 유적은 그 자체가 훌륭한 문화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원형을 잃고 있다.

애월 고내리 포구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에 위치한 고내리 포구는 마을의 중심부에 있다.

대부분의 제주 포구들처럼 고내포구도 자연지형물인 코지를 방파제 삼아 만들어진 포구다.

하지만 지금은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던 갯바위들을 없애고 콘크리트 방파제를 만들었다.

안쪽에 옛 모습을 간직한 접안시설이 남아 있어 옛 모습을 가늠할 수 있다.

제주에서는 포구를 성창으로 불러왔다.

고내성창은 고려 원종11(1230) 무렵에 축조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탐라기년(耽羅紀年)에 따르면 당시 삼별초가 제주에 들어와서 귀일촌에 항파두리성을 쌓아 이를 근거지로 삼았고 외곽성으로 애월에 목성을 구축했다는 기록이 있다.

1940년대에는 15t급 화물선이 드나들기도 했지만 성창의 규모는 열악하다.

고내리 바다는 요강터라고 불리기도 했다.

애월리와 신엄리 경계지역인 강척코지에서 개구미에 이르는 바다 바닥은 요강처럼 움푹 팼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강터 일대에는 자갈밭이 넓게 펼쳐져 있기 때문에 그물을 드리우면 대부분 찢어져 버려 바다가 삶의 터전인 주민들에게는 포구가 절실히 필요했다.

지금도 고내포구는 몇 척의 배가 이용하고 있을 뿐이지만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현재는 올레길과 엄장 해암길 코스에 포함돼 방문객이 끊이질 않는다.

 

귀덕2리 진질개 옛등대 모습. 외벽은 현무암을 이용해 허튼층쌓기를 했고 속은 잡석채움을 했다.
귀덕2리 진질개 옛등대 모습. 외벽은 현무암을 이용해 허튼층쌓기를 했고 속은 잡석채움을 했다.

귀덕2리 진질개 옛등대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의 옛 이름은 진질이다. 긴 길을 뜻한다. 포구 이름도 진질개.

진질은 바람 많은 동네다.

진질개 오른편에는 지금의 등대 역할을 하던 옛등대가 있다.

원뿔모양으로 쌓아 올려진 형태가 해안에서 흔히 볼수 있는 방사탑처럼 보인다.

등대가 세워지기 이전 뱃사람의 아내들은 비바람이 치는 밤이면 횃불을 들고 포구로 마중을 나갔다.

이것을 갯불이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이를 대신해 1915년을 근간으로 제주의 포구에는 도대라는 옛 민간등대가 1960년대까지 축조됐다.

진질개 옛등대 외벽은 현무암을 이용해 허튼층쌓기를 했고 속은 잡석채움을 했다. 윗부분에는 호롱불을 놓기 위한 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관망을 겸할 수 있도록 윗면이 넓게 되어 있다.

또 주변에 높은 지형이 없어서 가급적 높게 쌓기 위해 처음부터 밑지름을 크게 잡고 석축했다.

이 옛등대는 크게 대를 이루는 부분과 등화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불을 켜거나 관망 시에 위로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많이 허물어져 그 형태를 알 수 없는 상태였지만 지금은 상단부 시설을 제외한 부분은 전반적으로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인근 한수풀 해녀학교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해녀양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귀덕2리 벵단원은 남서쪽에 있는 용천수 ‘벵단이물’의 지경 이름을 딴 갯담이다. 원 모양으로 담을 쌓아 갯담 안으로 들어온 고기 떼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귀덕2리 벵단원은 남서쪽에 있는 용천수 ‘벵단이물’의 지경 이름을 딴 갯담이다. 원 모양으로 담을 쌓아 갯담 안으로 들어온 고기 떼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귀덕2리 벵단원

갯담은 밀물 따라 들어온 고기떼가 썰물이 되어 바닷물이 빠져나갈 때 돌담 안에 갇히게 된다는 점을 이용, 고기를 잡을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갯담을 쌓을 때 바깥쪽은 비스듬하게 돌을 쌓아 고기가 쉽게 넘어 들어오도록 하고 안쪽에는 수직으로 돌을 쌓아 들어온 고기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에 위치한 이곳은 벵단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귀덕 주민들은 인근에 있는 마을을 망밭이라고 부른다.

주변 망밭의 주둔했던 병사들이 주둔했던 곳이라 병단이라고 했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벵단이의 의미는 알 수 없다.

벵단원은 지경 이름을 딴 갯담이다. 남서쪽에는 벵단이물이라는 용천수가 있다.

서쪽으로 뻗은 벵단이코지샛여사이에 있다.

벵단이코지가 북풍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하고 제석동산의 맥이 샛여까지 이어진다.

벵단이코지와 샛여 사이에는 바위가 솟아 있다.

제석동산 줄기가 끊어지는 지점에서부터 큰 바위까지, 다시 그 바위에서 샛여까지 담을 쌓아 원을 만들었다.

이는 갯담 안으로 들어온 고기 떼가 서쪽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샛여에서 동쪽의 망밭동네 갯가까지 벵단이코지 안쪽으로 담을 긴 둥근 모양으로 막았다.

높이는 1m, 폭은 1.8~2m 정도이다.

갯담 안에는 모래 바닥에 큼직한 돌들이 깔려 있고 갯담 밖 넓은 면적에도 굵은 돌들이 많다. 이 돌들은 썰물 때에는 반쯤 잠긴다.

인근 해안도로는 올레길 코스에 포함돼 올레꾼과 관광객들이 자주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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