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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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철, 정치부장

어떤 사업을 하는데 갑(甲)과 을(乙)이 계약을 맺고자 했다. 투자를 약속한 을은 이행 각서를 줬다. 그런데도 영 미덥지 못했는지 갑은 돈부터 내놓으라고 했다.

“먼저 3373억원을 입금하면 다시 생각은 해 볼게…단, 허가를 내주겠다는 말은 아니야.”

2017년 6월 법과 제도에 없었던 제주특별자치도 자본검증위원회가 구성된 후 2년 동안 불과 4번의 회의 끝에 내린 결정을 요약하면 이렇다.

마라도(30만㎡)의 12배의 이르는 제주시 오라동 357만5000㎡ 부지에 5조2000억원을 투자해 대규모 마이스복합리조트를 건설하는 오라관광단지 개발사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1997년 제주를 국제적인 휴양지로 만들기 위한 제주도종합개발계획에 따라 오라관광단지는 20개 관광지구에 포함됐다.

1999년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가 대규모 농림지역을 준도시지역으로 국토이용계획을 변경하면서 관광지로 개발할 수 있게 됐다.

첫 사업자인 쌍용건설은 계열사인 쌍용자동차의 누적된 부채로 자금난에 빠져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사업에서 손을 뗐다.

이어 웅진그룹 계열의 극동건설이 사업권과 개발부지를 인수, 2008년 시행자 변경 승인을 받아 사업을 재추진했지만 4년 뒤 만기어음 150억원을 막지 못하면서 사업은 다시 물거품이 됐다.

1999년 사업 승인 이래 제대로 된 투자자가 나오지 않으면서 사업자는 6차례나 바뀌었다.

2016년 중국 베이징에 본사를 둔 화륭그룹이 나서면서 꺼져가던 개발의 불씨를 살려 놓았다. 화룡그룹은 국가 공기업으로 우리나라의 자산관리공사에 해당된다. 사업권을 인수한 후 오라공동목장을 포함한 개발부지 100%를 매입했다.

그래도 제주도정은 여전히 미덥지 못했다. 2016년 10대 의회에서 재무회계보고서를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화룡그룹의 자산 규모는 244조원으로 같은 해 삼성전자의 230조원보다 14조원이 더 많았다. 예금 보유액만 26조원인 중국 최대 자산관리공사라는 게 입증됐다.

오라관광단지를 맡은 계열사인 화륭치업(置業)은 부동산개발회사로 연간 영업이익은 9000억원에 달했다.

그런데 지난해 4월 부정부패에 연루된 화룡그룹 최고 경영자가 교체되면서 제주도정은 또 다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이에 화룡치업의 신임 가오간 대표는 지난해 9월 원희룡 지사를 만나기 위해 제주를 찾았다. 신임 대표는 법과 절차에 따라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해외 투자를 통제하면서 홍콩 법인을 통해 투자를 이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자본검증위는 분양 수입을 제외한 총사업비의 10%인 3373억원을 선 입금할 것을 요구했다.

제주도의회 일부 의원들은 이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자본검증위가 거액을 입금토록 한 것은 강요와 직권남용 등 형사소송으로 비화될 수 있다고 했다. 만약에 3373억원을 입금하면 허가를 해줄 것이냐는 한 의원의 질의에 원 지사는 “그룹 책임자가 제주를 방문, 책임 있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원 지사는 민주당과 국토부가 참여한 당정협의에서 제2공항 건설 속도를 계속 늦추면서 “제2공항에 대해 문재인 정부와 지역 국회의원들은 안 할 거면 차라리 안한다고 얘기를 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오라동 주민들의 심정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원 지사가 오라관광단지에 대해 속 시원한 얘기를 해주지 않아서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작금의 현실에 대해 ‘오라의 저주’라고 표현했다. 저주받은 땅에선 그 누구도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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