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달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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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호 수필가

유수 같은 세월이라 했던가. 짙은 구름으로 인해 기해년의 일출을 볼 수 없어 안타까워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월이다. 화사하던 벚꽃도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동백꽃도 선혈을 흩날리며 제 빛을 잃은 지 오래다. 하루가 다르게 번성하는 고사리들이 있어 그나마 봄의 생명력을 느끼게 해 준다. 4월이 빚어낸 어수선한 모습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 겨울은 따뜻했었다. /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 주었다.……

194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출신의 영국 작가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1922년에 발표한 서사시 황무지의 제1죽은 자의 매장일부분이다.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혹한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절망감, 그리고 그 절망마저 의식하지 못하는 당대인의 냉정하고 황폐한 정신세계를 엘리엇은 가장 잔인하다는 수식어로 상징화하여 표현했다.

그래서 그런가. 4월이 되자마자 건조주의보가 발효되더니 강한 바람을 타고강원도 지역에 재난급 화마가 닥쳐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새 5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말끔히 씻기지 않은 상처가 남아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반가운 봄이라지만 이래저래 4월은 응어리진 가슴으로 우리 곁에 머무는가 보다. 더욱이 우리 고장 사람들에게는 결코 잊히지 않는 4·3이라는 역사적 커다란 슬픔이 자리한 달이 아닌가. 특별한 이유도 없이 희생된 이들의 억울함이 유족들의 눈물에 담겨 붉은 동백꽃잎으로 되살아나는 듯하다. 어설픈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어 역사적 진실을 재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루 속히 치유의 손길이 닿아 진실을 규명하고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함이 마땅하리라.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봄과 가을이 점점 짧아져 간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봄은 봄이다. 생명이 움트는 계절이다. 겨우내 앙상하던 정원수의 가지마다 제법 파릇한 새순이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것은 곧 희망이다. 늘 그렇듯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희망이 샘솟는 법이다. 그게 대자연의 섭리인 게다.

거칠고 메마른 사막에도 오아시스가 있듯이, 황무지에도 쉬 눈에 띄지는 않지만 분명 희망을 품은 생명체는 존재하리라. 잔인하다는 4월이지만, 황금돼지해의 봄이 정녕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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