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의 흔적을 찾아서’
‘4·3의 흔적을 찾아서’
  • 제주신보
  • 승인 2019.04.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경업, 전략사업본부장 겸 논설위원

제주4·3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그 과정서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 1인 3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두 집 건너 한 집 혹은 세 집 건너 한 집 꼴로 희생자가 생긴 셈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 참상은 너무나 끔직하다. 이에 따른 상처도 매우 크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제주의 아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일요일이었던 지난 21일은 다소 더웠지만 걷기엔 괜찮은 날씨였다. 청록의 보리밭과 노란 유채꽃, 푸른 빛의 바다는 완연한 봄기운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날 고교 친구 30여 명과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동창 모임인 ‘현승회(賢承會)’ 가 4·3의 상흔을 기억하는 탐방행사를 열었기 때문이다.

탐방은 ‘4·3의 흔적을 찾아서’란 이름으로 진행됐다. 먼저 4·3의 도화선이 됐던 ‘3·1절 집회 장소’인 제주북국민학교를 시작으로 제주감찰청 자리, 제주신보사 사옥, 서북청년회 본부, 인민위원회 옛터, 관덕정 등 이른바 ‘제주 성안’의 흔적을 차례로 둘러봤다.

▲이어 함덕 서우봉을 거쳐 소설 ‘순이 삼촌’의 배경 장소인 북촌리 너븐숭이 4·3유적지를 찾았다. 너븐숭이는 넓은 돌밭을 뜻하는 제주어다. 4·3 당시 이 일대에선 가장 잔인했던 대학살이 자행됐다. 1949년 1월, 무고한 북촌리 주민 400여 명이 무차별적으로 총살당한 거다.

너븐숭이 4·3기념관 전시실에 걸려 있는 죽은 엄마의 젖을 문 아기의 그림과 함께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너희도 모두 죽으리라”로 끝나는 ‘북촌리에서’란 시가 그날의 처절한 상황을 전해준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기념관을 돌아본 친구들의 마음은 무거웠다.

▲탐방의 마지막 코스는 사려니숲 일명 ‘북받친 밭’이었다. 그곳엔 무장대의 은거지 였던 이덕구 산전(山田)이 있다. 이덕구는 무장대의 2대 사령관이었던 인물로,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까지 엇갈린다. 날카로운 질문과 열띤 토론이 이어진 이유다.

아무튼 인권과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이번 탐방은 동창회 차원에선 보기 드문 행사였다. 거기에다 1만6000보 이상을 걸어 건강도 챙겼으니 알찬 하루가 아니었을까. 4·3 유적지 탐방이 사회 곳곳에 확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