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끝 닮았다 해 이름 붙여져···표해록 저자 장한철 생가도 이곳에
물가에 뜬 달(涯月)은 고뇌에 찬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됐으리라···
봄 햇살에 가늘게 눈 떠보니 작은 봉우리 하나가 눈앞에 펼쳐진다. 애월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모습이 마치 붓끝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문필봉’이다. 뒤로는 한라산을, 앞으로는 바다를 둔 문필봉은 그 좋은 정기 덕에 섬사람들이 자주 치성을 빌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애월은 예로부터 인재를 많이 배출한 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해양문학의 백미로 손꼽히는 ‘표해록’의 저자 장한철의 생가로 알려진 곳도 이곳에 있다. 시인 김종호님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는 그렇게 먼 옛날의 애월로 떠났다.
한때 청운의 꿈을 품은 수많은 발길이 다녀간 곳, 섬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이들이니 얼마나 간절했을까. 꿈을 이룬 이도, 꿈을 접은 이도, 애월 바다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 것이다. 물가에 뜬 달- 애월(涯月). 달빛 그림자 지는 애월 바다는 고뇌에 찬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었을 것이다. 이정환 시인의 ‘한 번도 아파해 않는 파도의 부딪침을 보아라’는 시구절처럼, 깊고 너른 바다를 보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으리라. 문필봉의 시간은 그렇게 시가 되고 노래가 되었다. 시낭송가 이정아, 장순자님의 목소리를 타고서...
흰 저고리에 꽃분홍 치마, 손에 쥔 부채 하나. 그거면 족하다. 사랑의 부름에 이토록 아름다운 답가가 또 있을까.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 ‘사랑가’에 맞춰 무용가 장은님의 춤사위가 무대에 올려졌다.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시대와 시간을 뛰어넘는 춘향과 몽룡의 연정을 떠올리며 잠시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가 본다.
흐르는 것은 나를 비어 있게 하고, 머물러 있는 것은 나를 채운다. 낡고 고된 인연은 잠시 접어두고 새롭고 낯선 만남의 설렘을 한껏 받아들이고 싶다. 지금은 봄이니까. 삶의 찬가를 부르고도 남을 눈부신 계절이니까. 성악가 황경수, 김영곤, 박다희님의 ‘봄이 오면’. 세 사람의 목소리가 봄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경쾌하고 청량한 선율로 낭만에 취하게 만든 오현석님의 리코더 연주 ‘차르다쉬-헝가리의 민속 무용곡’도 오래도록 귓가를 간지럽힌다. 음악인들이 풀어놓은 그 길고 진한 여운에 애월의 봄이 또 다시 추억 속으로 저문다.
애월 문필봉에서 다시 만났다.
우리가 만난 풍경은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모두의 가슴 속으로 흘러들어가 다시 바람을 일으켰다.
더 크고, 더 아름답게.
바람난장, 그 이름처럼.
사회=김정희 해설=김종호 그림=홍진숙 성악=황경수 김영곤 박다희 리코더=오현석 무용=장은 시낭송=정민자 이정아 장순자 음향=최현철 영상=허영숙 사진=채명섭 음악감독=이상철 글=김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