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으로 태어나는 예술의 명소, 미술관
기증으로 태어나는 예술의 명소, 미술관
  • 제주신보
  • 승인 2019.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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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학예연구사

한 나라, 한 지역을 문화적인 명소로 만드는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좋은 예술작품을 갖추는 일이다. 세계적으로 기증을 통해 유수의 미술관을 만든 사례가 적지 않다. 기증자는 예술가의 가족에서 시작되어 지인과 지역사회로 이어진다.

기증 작품은 예술작품에 더해지는 기증사연 때문에 사람들에게 더 큰 감동을 전해준다.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는 ‘진정한 선물 행위는 받는 사람의 기쁨을 상상하는 기쁨’이라고 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작품 기증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선물하는 것이다.

피카소미술관은 피카소의 친구 하이메 샤바르테스가 기증한 피카소 작품 전시로 개관했다. 이후 샤바르테스가 기증한 작품과 피카소가 소장한 초기 작품을 기증하면서 피카소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가 됐다.

덴마크 오슬로 국립미술관 관장 옌스 티스는 1908년에 에두바르 뭉크의 작품 <그 다음 날>·<사춘기>·<잿더미>·<베란다의 두 소녀>·<프랑스 인> 등 다섯 점을 국가 소장품으로 긴급 매입했다. 이 작품들이 머지않아 해외로 팔려나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뭉크의 컬렉터 올라프 쇼우는 국립미술관에 <마돈나>·<병든 아이>·<어머니와 딸>·<다리 위의 소녀들>을 기증했고, 이듬해에 다시 <절규>·<병실에서의 죽음>·<인생의 춤>·<화장하는 소녀>·<니스의 달빛>·<뱃시>를 기증했다. 1909년 평론가 야페 닐센은 뭉크의 작품들로 전시회를 열었고, 이 전시회로 뭉크의 작품은 물론 그의 명성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1992년 미국의 허버트 보글과 도로시 페이 부부는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와 함께 기증 사업을 펼쳐 170여 명의 현대미술작가 작품 2500점을 50개 주에 각각 50점씩 기증해 전미 미술계에 충격을 줬다. 이들 부부는 평범한 사람들로 남편 보글은 야간 우체부의 서기였고, 부인 페이는 공공도서관의 사서였다. 이들은 평생 4782점의 작품을 구입했다. 이들의 미담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돈이 많은 사람만 수집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사랑하는 열정이 있다면 누구든지 좋은 컬렉터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다.

마티스 박물관은 마티스 가족이 기증한 450점과 같은 고향 출신 화가 오귀스트 에르뱅이 기증한 작품으로 프랑스의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일자리가 많지 않았던 칼레지역이 관광도시로 변하면서 호텔, 레스토랑 등 도시의 경제적 가치가 살아났다. 마티스 박물관은 교육적 영향을 인정받으면서 1년에 3만 명의 어린이가 방문한다고 한다.

문화자산인 예술작품이 공공성으로 전환될 때 돌아오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먼저 읽어내었고, 그것은 바로 예술의 도시를 만들어내는 토대가 됐다. 미술관의 질적인 가치는 미술관의 소장품에 의해서 판가름 난다. 오늘날 우리가 감탄해 마지않는 유럽의 유명 미술관들은 많은 사람들의 기증에 의해 이루어졌다.

우리는 21세기 문화의 세기를 살고 있다. 지방자치를 표방하고 문화도시를 꿈꾸는 도시라면 무엇보다도 그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예술작품을 서둘러 확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