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깃발 법
빨간 깃발 법
  • 제주신보
  • 승인 2019.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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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린 제주대 자연과학대학장·전산통계학 교수/논설위원

1826년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자동차가 개발되었다. 증기기관을 탑재한 28인승 버스가 운행되면서 자동차라는 새로운 산업이 생겨나고 있었다. 하지만 1865년 영국 의회가 빨간 깃발 법을 제정하면서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몰락한다.

법안의 정식 명칭은 “The Locomotives on Highways Act". 적기조례, 혹은 빨간 깃발 법으로 불린다. 이 법은 여러 번 개정을 거쳤지만,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자동차는 시가지에서 시속 3.2㎞이상으로 달릴 수 없다. 자동차를 운행하기 위해서는 운전사, 기관사, 기수 3명이 있어야 한다.

기수는 낮에는 빨간 깃발, 밤에는 빨간 등을 들고 자동차를 앞서가며 자동차는 기수를 앞지를 수 없다. 말과 마주친 자동차는 정차해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법 제정이다. 빨간 깃발을 따라가야 하는 자동차는 그 능력을 다 발휘할 수가 없다. 최대 속도가 시속 3.2㎞면 일반인이 올레길을 걷는 속도보다 느리다. 당시 주요 이동수단이었던 마차와는 경쟁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먼 옛날 먼 나라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이런 법이 제정된 이유와 결과, 그리고 시사점을 생각해보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해 보인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을 선도하던 국가였고 자동차 산업은 그 당시에는 신산업이었다. 기존의 이동수단인 마차 산업 종사자의 수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신산업 종사자의 수보다 많았다.

다수인 마차 산업 종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자동차를 마차보다 빨리 달릴 수 없도록 규제했고, 그 규제는 성공했다. 규제 속에서 운행해야 하는 자동차를 구매할 사용자는 많지 않았다. 영국의 마차 산업은 법의 보호 아래 그 후 30년 동안은 안정을 유지했다.

반면에 빨간 깃발 법으로 진로가 막힌 자동차 관련 기술과 자본은 영국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영국 정부가 그 법을 폐기하기 까지 31년 동안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은 독일로 넘어갔고, 그 주도권은 현재까지 유효하다.

산업혁명의 발상지였고, 자동차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던 나라였지만, 잘못된 정치적 선택으로 영국은 자동차 산업에서 밀려났다.

빨간 깃발 법을 제정한 사람들은 그 당시에는 자동차가 진화해서 오늘날처럼 거대한 산업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다. 새로운 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기존산업을 대체해 나갈 것이다. 그 와중에 기존 산업과 미래 산업과의 충돌이 생겨날 것이다.

승차공유서비스 종사자들과 택시사업 종사자들 간의 충돌은 앞으로 닥쳐올 자율주행 자동차와의 충돌에 비하면 사소한 일일 것이다.

자율주행차가 등장하면 승차공유서비스 운전자와 택시 운전자는 모두 밀려날 것이다. 아무런 대책 없이 밀려나는 당사자들이 담대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미래 산업에 대한 사회적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대체되는 산업 종사자들의 생계도 보호해야 하고, 미래 산업 개발자들의 의욕도 꺾지 말아야 한다. 국가 차원의 고민이 필요한데,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직업 전환을 위한 평생 교육체제를 확대 설계해야 한다. 어떻게 일과 여가, 교육 훈련을 병행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안 마련도 필요하다. 미래 비전에 대한 풍성한 논의와 차분한 준비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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