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커튼
역사와 커튼
  • 제주신보
  • 승인 2019.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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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선교와 신학의 문제로, 1990년대 후반부터 러시아 연방의 북(北)오세치아 공화국에 가고오고 한 것이 서른 번을 넘었다. 현지의 대학에서 논문을 발표하고 관계 맺는 과정에서 공화국 인권위원회와 함께 일할 때가 있었다. 당시에는 모라토리움의 상황에 놓여서였는지 그들은 마음을 열고 나를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런 시기에 인권위원회 친구들이 어디론가 함께 가자고 했다. 통역하던 고려인은 ‘말 연극’을 보러간다고 했는데 그들은 나를 ‘마상(馬上) 쇼’ 공연장으로 안내했다. 서커스단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천막 안에서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이 말을 타고 둥근 레인을 달리면서 묘기를 보여주었다. 말발굽 소리가 눈앞을 스치며 달릴 때는 내 가슴이 두근거리는 소리를 듣는 듯했다. “아! 우리의 고구려가 저렇게 말을 달리며 전쟁을 했겠구나.” 수백 년 전 어느 전쟁터에 세워진 느낌을 받으면서 이런 생각이 나를 일깨우는 듯했다. “아! 역사는 이런 방식으로 지금도 살아서 숨을 쉬는 것이로구나.”

말 연극에 이어서 그들은 도심의 오페라 극장으로 나를 데려갔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 이곳저곳을 살피는 동안에, “이런 것이 문화요 역사로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의 세종문화회관 같은 대단한 극장이 그들에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의자들은 아주 오래된 나무 의자로 그야말로 허름했고, 무대의 마룻바닥에 가느다랗게 수없이 솟아난 보풀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였다. 그런 역사의 무대 위에 높고 넓고 두터운 서너 겹의 커튼이 띄엄띄엄 드리워져 있었다.

커튼을 하나 걷어내서 제1막을 공연하고, 그 다음의 커튼을 걷으면서 제2막을, 그러고 나서 제3막의 커튼을 걷어내는 방식으로, 그런 커튼이 서너 겹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무대는 아주 넓고 깊숙했다. 어쩌면 러시아라는 나라가 그렇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제1막은 얼마 전에 문을 연 페레스트로이카이고 제2막은 공산주의 소련이고 그 다음 막을 걷어내면 차르가 다스리던 제정 러시아이고….

무대 뒤편 깊은 곳으로부터 러시아 정교회의 종교 음악이 들려오는데 백성들의 삶은 허름한 나무 의자들처럼, 오래된 무대 위에 수없이 솟아난 가느다란 보풀처럼 무심하게 버려진 듯이 보였다. 어떤 것은 너무 고귀하게 보였고 또 어떤 것은 이해가 안될 정도로 버려져 있는 듯했다. 멀리서 찾아간 내가 그들의 역사를 이해하려고 많이 읽고 듣고 생각하고 기억하고 정리하고 해도 올바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이 러시아의 역사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눈앞에 드리워진 한 겹의 커튼에만 지나치게 매달리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될 때가 있다. 눈앞의 한 겹 커튼으로만 역사를 해석하든가 가리든가 하는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악순환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도 넓고 깊고 높은 여러 겹의 커튼이 드리워져 왔을 텐데 말이다.

내 눈앞을 스치며 사정없이 달리던 말발굽 소리가, 가느다란 보풀이 수없이 솟아난 오페라 극장의 무대가, 그 위로 여러 겹 드리워진 역사의 커튼들이 다시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