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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복자 수필가

 

고대 그리스인들의 신화의 땅, 델피에 왔다.

산등성이에 올라 앞을 보니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나무 숲이 거뭇하고 뒤를 돌아보니 바위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있다. 이곳은 천 년 넘는 세월 동안 절대적인 권위를 지녔던 신탁 장소다. 영기가 흘러서 일까. 지중해 연안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국가 문제와 개인의 사연을 안고 온 사람들로 붐볐다 한다. 오늘은 피부 빛과 언어가 다른 여행객들로 한낮의 시장 같다.

왜 신기를 잃게 되었을까?”하고 궁금해 하자

그리스가 로마에게 점령당한 후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명령에 의해 델피가 폐쇄됩니다.”하고 가이드가 알려준다.

그리스 신화에는 12 신이 있었다. 신들의 왕이며 기상 현상을 주장한 신은 제우스다. 여신 아테나는 지혜와 전쟁을 담당하는 등 12 신은 각각 다른 권능으로 세상을 지배하였다. 그중 태양과 예언의 신인 아폴로의 신탁은 사회적, 윤리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였다. 유일신을 믿는 황제의 눈에 이들이 믿는 신은 우상으로 보였을 것이다. 종교와 문화도 승자의 논리에 따라 흘러간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그들이 신탁을 받기 위해 걸었던 길을 간다. 오이디푸스도 이 길을 갔을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삼아 자식을 낳을 것이다.’ 이것이 오이디푸스가 받은 신탁이다. 계시는 현실이 되고, 그의 아내이자 어머니였던 이오카스테는 자살로 삶을 마친다.

남편이 받은 신탁이 그녀에게는 독배였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신이 정한 굴레 속으로 끌려간 그녀의 영혼은 여름 가뭄에 마른풀 같았겠지.

세상의 중심이라 여겼던 옴파로스가 보인다. 그리스의 신 제우스가 독수리 2마리를 각각 동쪽과 서쪽에 놓아주었다. 독수리는 델피에서 만난다. 그 지점을 표시했던 돌멩이가 옴파로스다. 그리스 때는 아폴로 신전의 지하공간에 있었다. 그곳에서 여사제 피티아는 삼각의자에 앉아 지하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유황가스를 맡고, 월계수 잎을 씹으며 접신하였다 한다. 옴파로스는 신접한 인간을 보증하는 역할을 한 것은 아닐까.

 

언덕배기에 흔적만 남은 아폴론 신전 앞에 섰다. 바닥에 깔린 정방형 검은 돌들과, 방향에 따라 기역자로, 니은자로도 보이는 여섯 개 기둥이 있다. 2500여 년 전 옛 모습을 가늠하여 보지만 잡히지 않는다. 아폴로 신과 접신한 무녀를 통해서만 계시를 전하던 곳이다. 배꼽에서 생명이 시작되듯 신탁은 국가의 운명이나 개인의 인생을 좌우했다. 심지어 식민지 통치 방법까지 신탁에 의지했다니 영험이 서렸던 곳이다.

사방을 들러 봐도 아폴로 신과, 신탁을 받으며 절대 권력을 누리던 제왕들의 숨결은 느끼지 못한다. 세상의 배꼽이라 여겼던 옴파로스 진품은 사라지고 모조품 돌덩이만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해 아래 있는 것은 헛되다는 성경 말씀이 가슴을 두드린다.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은 어느 쯤에 있었을까 하고 허공을 둘러보는데 동행이 신전 기둥이었다는데? 무엇이든 지나침이 없어야 한다, 신을 따르라, 가정을 수호하라, 가진 것을 베풀어라 등의 격언도 기록되었고, ‘너 자신을 알라의 원뜻은 너 자신을 잘 배려하라는 것이라 덧붙인다.

그 때나 오늘날이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한 것 같다. 생과 사, 행복과 불행 등 자신의 미래를 모르는 인간은 한계가 있으니 신앙을 가지고 절제와 배려로 선한 삶을 살라고 가르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폴로 신께 해답을 구하였다. 오늘날도 유일신이나 다신교를 믿는 사람은 절대자나 자연물에 기도하고 의식을 행한다. 이 행위로 삶의 고뇌를 해결하고, 의미를 찾으려 한다. 또한 진리와 정의, 선한 길을 찾고, 영혼의 평안을 구하기도 한다. 이 노력 역시 자신만의 색깔과 향기를 만들고 이웃을 배려하며 살아가라는 말이 아닐까.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방향을 잃은 채 달리지 말고, 내면의 벽도 허물며…….

 

델피는 그리스인들의 순례지였다. 내가 찾아가야 할 순례지는 어디일까. 가장 먼 곳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길이라는데. 그곳이 멀겠지만 걷다 보면 햇빛도 쏟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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