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 이웃한 애월 바다서 詩를 낚다
청보리 이웃한 애월 바다서 詩를 낚다
  • 제주신보
  • 승인 2019.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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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곽지리 문필봉 일대(下)
첫사랑과 헤어질 때 흘린 눈물, 눈물이 초록빛 밭에서 바람이 되고···
'차르다쉬-헝가리의 민속 무용곡' 등의 리듬에 맞춰 봄은 절정으로
바람난장 가족들이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문필봉 일대를 찾았다. 문필봉 주변 청보리밭에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허리까지 웃자란 보리밭 장관에 감탄하며 풍경과 닮아 가기 위해 예술난장을 펼쳤다.
바람난장 가족들이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문필봉 일대를 찾았다. 문필봉 주변 청보리밭에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허리까지 웃자란 보리밭 장관에 감탄하며 풍경과 닮아 가기 위해 예술난장을 펼쳤다.

방울방울, 첫 사랑과 헤어질 때 흘리던 눈물 같은 곳. 거두지 못한 그리움이 바람이 되어 길을 묻는 곳. 봄날,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할 때면 나는 보리밭을 찾는다.

운이 좋게도 바람난장이 든든한 동행자가 되어 주었다. 바람난장의 두 번째 행선지는 초록빛에 출렁이는 보리밭이다. 청보리 섬- 가파도 못지않은 보리밭 풍경을 애월 들판 한 가운데서 만났다. 누구랄 것 없이 허리까지 웃자란 보리밭 장관에 감탄하며 스스로 풍경의 일부가 되어 갔다.

 

황경수·김영군·박다희 성악가가  ‘보리밭’을 불렀다. 그들의 목소리가 하모니가 돼 봄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나 그 자리를 물들였다.
황경수·김영군·박다희 성악가가 ‘보리밭’을 불렀다. 그들의 목소리가 하모니가 돼 봄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나 그 자리를 물들였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바람에 일렁이는 보리의 수근거림일까. 억세고 질긴 보리같은 인생일까. 풍경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쩌면 내 마음의 자리를 읽고 살피는 일일지 모른다. 지금 눈앞의 풍경에서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속 깊은 질문에 주춤해질 즈음, 성악가 황경수, 김영곤, 박다희님의 하모니로 완성한 노래 보리밭이 흐른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노을 빈 하늘만...’ 보리밭은 그런 곳이다. 추억만이 켜켜이 쌓인 시간의 창고 같은 곳.

얼마나 아팠던 것일까. 누군가는 너무 오래 사랑한 죄로 바다의 생채기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간다. 하늘도 별도 달도 바다에 잠겨버린 그 암흑의 시간에 저절로 숙연해진다. 반짝이는 애월 앞 바다에서 시인은 무엇을 길어올리려 했던 것일까. 연극인 정민자님의 아련한 감성으로 읊조린 시 구절구절에 다시 눈물이다.

견딘다,
빛으로 오는 것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전생이거나
 
왼쪽 어깨였던가요
너무 오래 사랑한 죄
 
오후 내내 반짝이는 윤슬이었다가
저녁이 오면 사라지는 꽃들
 
초승에서 하현으로 넘어가는 동안
바다는 멀미로 기억을 잃고
 
오래 바라보면 볼수록 너는
내가 아는 얼굴이 아니야
우리 언제 만난 적 있나요?
 
하루에 70만 번 들썩이고 뒤집어지는
파도가 바다의 운명이라면
어느 가슴에서 뜨고 지는 달이길래
가도가도 먼 지척일까
 
잘린 손톱들 모두 애월 바다에 와서
오래오래 뒤척이다
거스러미로 돋아나는,
-김효선, ‘몽상, 애월에서전문
 
 
해설과 시낭송을 맡은 정민자 연극인.
해설과 시낭송을 맡은 정민자 연극인.

흔들려야 보리다. 어쩌면 보리는 바람을 증명하는 가장 섬을 닮은 작물일지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 자연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 보리다. 보리밭 주인 이경훈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전국 어디에도 없는, 조형예술과 보리가 하나의 작품이 되는 밭을 완성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미 그 첫 번째 화폭을 펼쳐놓았다. 피땀으로 가꾼 보리밭에 한 예술가의 작품 설치를 허락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남다른 포부와 용기에 바람난장은 아낌없는 박수와 응원을 보냈다.

 

경쾌하고 청량한 선율로 낭만에 취하게 만든 오현석님의 리코더 연주 ‘차르다쉬-헝가리의 민속 무용곡’도 오래도록 귓가를 간지럽힌다.
경쾌하고 청량한 선율로 낭만에 취하게 만든 오현석님의 리코더 연주 ‘차르다쉬-헝가리의 민속 무용곡’도 오래도록 귓가를 간지럽힌다.

농부의 꿈, 시인의 기억, 나와 당신의 추억 이야기.

모두 풍경이 있으면 함께 남는 것들이다.

왜 보리밭인가 묻는다면, 바람난장은 답한다.

당신에게도 지켜내고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그 무언가가 남아있지 않느냐고.

사회=김정희
그림=홍진숙
해설=김종호
성악=황경수 김영곤 박다희
리코더=오현석
무용=장은
시낭송=정민자 이정아 장순자
영상=허영숙
사진=채명섭
음향=최현철
음악감독=이상철
=김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