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머리 사람들은’
‘섬머리 사람들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제주시 도두동(道頭洞)을 예로부터 ‘섬머리’라 일컬어 온다. 말 그대로 ‘섬(제주)의 머리’란 뜻이다. 그렇게 불려 온 데는 뒤꼍에 연유가 자리해 있다. 섬머리는, 주민의 마을 사랑과 한데 어우러져 사는 마을사람들 서로 간의 정리가 따스하다. 인정이 숨 쉬는 마을이다. 이름은 누가 지어 붙이기 전, 오랜 세월 속에 구전(口傳)돼 오는 것이다. 섬머리, 마을이름에 ‘머리’라 떴는데도 어감이 정겨우면서 살갑다.

도두동은 탄탄히 다져진 마을공동체로 주민들 사이의 연대감이 매우 강하다. 막연히 하는 얘기가 아니라, 이곳과는 소중한 연(緣)의 단초가 있었다. 회상이 23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인연의 징검다리를 놓아 준 이가 있었다. 동 사무장으로 재직했던 J 고 제자 故 김성남 군. 먼 길 읍내 집까지 찾아와 동민헌장을 제정하려는데 기초해 달라며 원고청탁을 하고 갔다. 며칠 뒤 문안을 건넸더니, “선생님, 이 인연으로 도두동 사람들 삶의 모습을 담아 시 한 편 써 주시렵니까? 좋은 자리에 걸어 놓겠습니다.” “그러지 뭐.” 대답해 놓고 나서 바람 쐬듯 마을을 군데군데 돌아보았다. 오래물도 가 보고, 도들봉에도 올랐다. 그렇게 해서 쓴 시가 〈섬머리 사람들은〉이다. 1996년의 일이었다.



섬머리 사람들은/ 비록 비행기 소리엔 귀를 틀어막지만

얼음보다 차가운 오래물이 있어 이곳에 산다//

섬머리 사람들은

먼 옛날, 오랜 문전옥답 다 내어 주고/ 죽 삼시로 몸은 곯았어도

긴 밤 자고나면 도들봉으로/ 다시 솟는 해

그 해 바라보며 살았다//

섬머리 사람들은 / 4·3에 집 잃고 길바닥에 나앉았어도

그 해 된바람 막아 준 도들봉/ 기어이 새 둥지 틀고 한(恨)도 삭였나니//

지금 섬머리엔/ 하수가 종말 처리되고/ 다들 싫어하는 위생처리장도 들어섰지만

거역을 모르는 순명의 사람들/ 이치에 복종하며 산다//

보다 더한 괄시와/ 보다 더한 증오가/ 해일로 덮쳐 온다 해도/

일탈 않는다, 섬머리 사람들은/ 열 받으면 오래물에 몸 담그고/

답답한 가슴을 도들봉에 올라 헤치고

땅 일구고 배를 띄운다//

오늘도 쉴 새 없이 비행기는 흔들어대지만/ 그 소리에 귀 틀어막아

오래물이 있어 이곳에 산다/ 도들봉이 있어 이곳에 산다

섬머리 사람들은 (김길웅의 ‘섬머리 사람들은’ 전문)



하나도 아니다. 공항, 하수처리시설 등 지역 이익에 반하는 혐오시설을 수용할 수 있었던 건, 분명 긍정의 힘이다. 마을 사람들이 시에 공명했나. 지난 4월 27일, 그곳 바다로 난 길목 ‘추억愛거리’에 시비가 건립돼 제막식을 가졌다. 일찍이 세상을 떠난 제자 김 군이 자리에 없어 허탈했다. 시비는 애초 그와의 인연이 단초가 된 것인데….

제막식은 길거리에서 마을주민들과 함께했다. 표정들이 밝았다. 그중에도 주민자치를 이끄는 분들이 특히 활발했다. 그분들 노고가 시비를 반듯이 세워 놓았지 않은가. 시를 새긴 큰 바위가 하도 기이, 절묘해 자체로 설치예술이다.

돌은 영구히 불변이다. 좋은 인연 하나, 가슴에 품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