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그 꽃자리
5월, 그 꽃자리
  • 제주신보
  • 승인 201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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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온통 초록이다. 흩뿌리듯 내린 안개비는 초록의 봄을 더없이 싱그럽게 만든다. 봄꽃, 지천에 계절을 희롱하느라 바쁘다. 5월에 내린 비는 백 가지 꽃을 피운다더니 처처에 고운 꽃 가득하다. 꽃의 향연 속에서 행사하기 좋아 그런가. 기념일들이 달력 안에 빼곡하다.

출근길, 고정된 주파수 따라 음악이 흐르더니 잠시 후 한 여인이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것은 꽃 같은 너를 얻은 것이다’라고. 중간에야 들어 무엇에 대한 말인지 잘 몰랐다. 흐름 상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자랑하고 싶은 것에 대한 질문과 대답인 듯했다. 아마 그 방송을 듣는 사람들 마음이 누가 묻지 않았고, 또 대답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 그렇지 절대 공감하는 내용이 아닐까 한다.

서한 사람인 한영(韓)이 쓴 『한시외전(韓詩外傳)』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말이 있다.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는 옛 가르침과 방금 소개된 내용의 의미가 어버이날에 앞서 새삼 깊이로 잦아든다.

꽃 같은 너. 문득 학창 시절 학교 가려고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살피는데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곱다, 네가 젤로 곱다’고. 그 시절 말도 안 되는 어머니 한마디에 짜증내며 ‘됐다’고 날 선 언어로 그 말에 대한 감정을 분풀이하듯 쏟아 냈었다. 이어 마루를 딛는 걸음걸음 쾅쾅 소리로 ‘나 화가 났음’을 알리며 학교로 향했었다. 이후 누구에게도 그런 얘기를 들은 기억이 없는 것 같다. 그때 들으며 말도 안 되던 말, 그리고 그 음성이 오늘 왜 이다지도 그리워질까.

어·머·니· 이 세 음절처럼 가슴 저미는 말이 또 있으랴. 사람은 자기가 그 상황에 처해야만 그때의 심정을 헤아리게 되고, 감정은 이미 회한으로 남아 스스로가 미련스럽기 짝이 없게 되는 것인가. 무조건적인 사랑이 얼마나 힘들고, 또 주기만 하는 사랑을 누가 할 수 있을까. 내리사랑, 부모님이기에 가능하리라.

한 노인시설에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어버이날이면 가족들이 손자 손녀를 앞세워 부모님을 뵈러 온다. 그날도 한 연고자가 꽃을 들고 어머니를 뵈러 왔다. 휠체어에 앉은 모습을 보며 왈칵 쏟아지는 감정에 ‘어머니, 어머니!’하고 이미 세월의 깊이를 온몸으로 힘겹게 받히고 있는 어머니를 눈물로 불렀다.

잠시 후, 전혀 본 적조차 없었던 듯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여 누구냐고 되묻는다. 이어 어머닌 들고 온 빨간 카네이션 꽃잎을 뜯어 입으로 가져가는 게 아닌가. 순간, 그 모습에 감정이 복받치며 아들은 차마 못 본 듯 자리를 피했고, 딸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걸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같이 울컥했었다. 기꺼이 내어만 주시던 어머니를 그렇게 마주할 줄이야 누구인들 알았으리.

헐거워진 감정 안으로 오래전 멀리 가신 어머니가 많이 보고 싶다. 어느 시인이 말처럼 하루만, 아니 한나절만이라도 뵐 수 있었으면. 아니 죄송했다고, 많이 감사했다고 한마디 건넬 수 있는 시간만이라도 허락되었으면 좋겠다.

내리다 갠 비로 부모님 누우신 그곳에도 들꽃 여럿 중 제일 고운 꽃이 피어 있겠지.

당신이 계신 그곳, 백 가지 꽃이 핀다는 이 계절은 꽃자리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운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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