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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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IPTV로 접한 영화 ‘가버나움’은 레바논 베이루트 슬럼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난민과 불법체류자 등을 캐스팅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인’이란 소년을 통해 아동학대와 인신매매, 가난 등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이들의 삶을 그려냈다는 호평으로 지난해 제71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국내에선 서울 등 대도시 몇 군데에서만 개봉하고 있지만, 15만명 가까이가 관람할 정도로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우리와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는 방증이다.

살인 미수로 수감 중인 자인은 TV 고발 프로그램을 접하고는 교도소 내 공중전화로 방송국에 “나를 낳은 부모를 고소하고 싶다”라고 한다. 자신을 태어나게만 했을 뿐 돌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자인은 부모와 함께 법정에 선다. 그는 왜 부모를 고소했느냐는 판사의 질문에도 “나를 태어나게 해서요”라고 되풀이한다. 그는 자기의 나이도 모른다. 출생 기록조차 없어서다. 의사가 치아 진단을 통해 12살로 추정할 뿐이다. 체구도 작고 바싹 말랐다.

학교 근처에는 가본 적이 없다. 대신에 소아 성애자들이 득실대는 거리로 내몰린다. 가족이 세 들어 사는 건물주의 가게에서 일하면서 가스통 같은 무겁고 위험한 물건을 배달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자기의 삶도 버거운데 올망졸망한 동생들을 살뜰히 챙기고,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아기를 돌보면서도 어긋나지 않는다.

부모는 자식에 대한 책임감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 어쩌다 부모가 된 것이다. 낮술에 취해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다. 학교에서 무상으로 나눠주는 구호품을 봐선 자인을 학교에 보내고 싶지만, 경제적 능력자를 상실할까 봐 포기하고 만다.

월세를 깎을 요량으로 갓 초경을 치른 11살 딸을 건물주에게 시집 보낸다. “엄마 가기 싫어요”라고 애원하는 딸에게 돌아오면 두들겨 맞을 줄 알라며 윽박지른다. 여동생이 임신 중에 하혈로 사망한 사실을 나중에 안 자인은 식칼을 들고 건물주에게 달려간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최근 밝힌 ‘전국아동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행위자는 놀랍게도 부모가 70%다. 준비가 안 된 부모가 양육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자인은 법정에서 말한다. “애들을 돌보지 않는 부모가 지긋지긋해요. 사는 게 신발보다 더러워요”라고. 사랑을 찾는 절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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