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벚꽃 만발했던 날 버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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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시인/논설위원

서귀포에서 한라산을 넘어 제주시로 가던 버스가 서귀포시 위쪽 산간 마을에 섰을 때였다. 할아버지 한 분이 버스에 올라서 어디로 가시느냐고 묻는 운전기사에게 대답이 없었다. 입을 반쯤 벌린 채 그냥 서 계시다가 돈을 내라는 말로 들으셨는지 지갑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돈 내실 필요 없으며 어디로 가시는지 말씀을 해달라니까 “김녕”이라고 작게 대답하셨다. 김녕 가는 차가 아니라고 해도 할아버지는 숨는 듯이 뒤쪽 의자로 가 앉으셨다.

버스를 출발시켰지만 운전기사는 심경이 복잡한 듯 비상등을 켜고 서행운전을 하다가 산기슭 정거장에 멈춰서 마이크를 들고 일어섰다. “어르신이 불편한 듯해서 경찰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조금 늦어지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운전기사와 경찰의 통화는 제주시 초입 파출소에 할아버지를 내려드리기로 하면서 끝나고, 버스는 정상 속도로 달렸다.

그 할아버지는 실제로 제주시 버스터미널에 내린 후 제주시 동쪽 마을 김녕으로 갈 계획이었을까, 벚꽃 만발한 날에 그저 꽃 이파리처럼 떠돌고 싶었을까, 막연한 그 마음에 현실의 목소리가 파고들자 어렴풋이 떠오른 지명이 김녕이었을까, 무엇이 그를 버스에 오르게 했는지 할아버지는 말이 없으셨다.

운전기사는 노인이 길을 잃으면 그를 찾으려고 가족들이 애쓸 것을 막고 싶었을 것이다. 그에게도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셔서 한때 길을 잃어서 애태웠을 수도, 아니면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셔 놓고 노인들을 더욱 유심하게 보는지, 혹은 부모님을 일찍 잃은 애틋함이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치매를 ‘노실’이라고 하며 노쇠로 인해 나타나는 실수로 여겼다. 사람들을 몰라보고 엉뚱한 말을 해도 그냥 가족들과 살던 대로 지내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고장 난 모습을 보이다가 다 탄 촛불처럼 스러지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었다. 그 동안 치매를 기억력과 추론 능력이 손상된 심각한 두뇌 질환으로 진단하고, 적극적으로 대항해 보려는 노력도 다각도로 이어졌지만 치료법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결국 자라면 늙어 죽는 것이 정해진 이치이니 치매가 오더라도 가능하면 자연스러운 일상을 누리는 것이 그나마 최선인 셈이다. 요양병원에 들어가 수동적으로 삶을 맡기면 더 빠르게 쇠퇴가 진행된다. 치매 증상이 있는 사람들도 일상생활을 지속하도록 네덜란드 치매 마을이 만들어졌으며, 지역 주민들이 다수 그 운영에 참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에 치매환자를 돌보는 지역 사회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 오무타시처럼 시민과 지자체, 기업, 지역 병원이 연계되어 치매 환자를 지원하는 지역 네트워크를 구성한 목적도 마찬가지이다. 치매환자의 일상을 지원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도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고 ‘치매안심마을’ 을 시작한 곳이 있다.

우리 제주는 다행히 지역 공동체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어서 상황을 크게 바꾸지 않더라도 치매환자를 돌보는 기반을 갖추는 데 유리할 것 같다. 버스 운전기사가 노인에게 보여준 염려와 배려를 보라. 앞으로는 그런 마음을 바탕으로 모든 주민이 기본 교육을 받고 체계적으로 연계되어서 치매 안심 공동체에 참여하게 될 것 같다. 옛 시인처럼 ‘노인의 늦은 계절에서 삭풍에 떠는 나무와 노래가 끊긴 폐허’를 보고, ‘석양이 서천으로 넘어간 황혼’에 대한 인식도 더욱 보편화 될 것이다. 그 황혼을 이어 오는 암흑은 곧 우리 모두의 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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