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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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문 수필가

제주도에 와서 산 지 삼 년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저녁에 같이 막걸리 한 잔할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는 제법 아는 사람도 생겼다. 술자리가 생기면 불러주는 사람도 있어서 제주 생활이 그리 외롭지만은 않다.

지난 주말, 고향 안동에 갔더니 퇴직해 돌아온 친구가 직접 담갔다는 막걸리를 따라주었다. 약간 붉은 기가 도는 막걸리였는데 맛이 깊고 은근했다. 이 막걸리를 만드는 데만 꼬박 14시간 이상이 걸렸으며, 만들고 난 다음 오랫동안 익기를 기다려야 한단다. 지금이야 마음대로 술을 담가 먹을 수 있지만, 어린 시절은 달랐다. 명절이 가까워져 오면 간혹 집에서 막걸리를 담갔는데, 면사무소에서 조사하러 나오곤 했다. 온 동네에 비상이 걸리고, 술독을 숨기느라 난리가 났다.

처음 막걸리를 마셔본 것은 동네 정자에서였다. 동네 또래들이 마을과 떨어져 산에 있는 정자에 모였다. 큰 양은그릇에 막걸리를 한 닷 되 정도 부었다. 우리는 빙 둘러앉아 막걸리를 주고받았다. 얼마나 마셨던가. 아마 혼자 한 되는 마셨던 것 같다. 나중에는 배가 불러서 도저히 더 마실 수가 없었다. 정자에서 내려오는데 발을 들면 길이 올라오고, 디디면 쑥 내려갔다. 하늘이 빙빙 돌기도 했다. 그리고는 친구네 아래채에서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 이후 내 막걸리 주량은 한 되로 정했다.

막걸리라는 이름은 (마구) 걸렀다또는 함부로 걸렀다에서 유래한다. 제주도에서는 탁바리라고 불리었다. 막걸리는 쌀과 누룩 원료인 밀이나 쌀겨, 밀기울, 조 등을 찌지 않고 자연 상태의 미생물을 증식시켜 술을 빚은 후 숙성이 되면 체에 밭쳐 버무려 걸러낸다.

막걸리는 5개 미덕을 지녔다고 한다. 허기를 다스려주고, 취기를 심하게 하지 않으며, 추위를 덜어주고, 일하기 좋게 기분을 돋우며,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준다.

막걸리는 낮은 열량의 술이다. 열량이 포도주나 소주, 위스키보다 훨씬 낮다. 알코올에 의한 열량이 소주가 141kcal인데 비해 막걸리는 29.95kcal이다. 아미노산과 유산균이 풍부하고, 비타민 B도 풍부하다. 뿐만 아니라 성인병 및 동맥경화증 예방, 항혈전, 항고혈압, 항산화 효과도 있다. 더욱이 항암효과도 있다 한다. 누룩 성분이 암세포의 이동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안주 없이 막걸리 2~3사발만 마시면 식사 대용으로도 충분하다.

여성들이 특히 관심을 가지는 다이어트 효과도 있다고 한다. 피부 미용에도 도움이 되는 비타민B와 페닐알라닌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서 매끈하고 탄력 있는 피부 유지 기능과 기미와 주근깨를 개선해 준다고 한다.

제주도에 오니 서울에서 마시던 막걸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어느 마트에서 그 막걸리를 제주에 온 지 2년 만에 발견했다. 이 막걸리는 막걸리의 고질적 문제인 시큼하고 텁텁하며 트림과 숙취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제주에서 살면서부터 제주막걸리를 마신다. 육지에서 마시던 막걸리 맛보다 약간 텁텁해서 처음에는 입에 맞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 맛이 더 은근하게 당긴다. 서울에서 마시던 막걸리는 상큼한 맛이 꼭 사람으로 치면 서울 사람같다고나 할까. 그런 면에서 제주막걸리는 역시 한번 사귀면 은근하게 정이 드는 제주 사람의 모습과 흡사하다 하겠다.

이제는 텁텁하고 끈적한 느낌의 맛에 더 끌리는 것은 어쩐 일인가. 은근하게 사람을 끌고, 몇 번 마시고 나면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제주막걸리. 사람도 이런 막걸리처럼 깊은 마음으로 신뢰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시나브로 제주 사람이 되어 가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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