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스물한 살 금방 찬물로 세수한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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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구억리 옛 구억국민학교(上)
4·3 발생 후 무장대와 국방경비대가 평화협정 맺기로 했으나 실패
지난 生의 기억 지우고 푸릇푸릇한 오월의 얼굴로 다시 태어나기를···
제주지역에서 실험예술을 펼치고 있는 바람난장 문화패가 지난 4일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 옛 구억국민학교 일대를 찾았다. 바람난장 가족들은 지난해 이곳에서 벌어졌던 제주4·3의 비극을 기억하기 위해 표지석을 세웠다.
제주지역에서 실험예술을 펼치고 있는 바람난장 문화패가 지난 4일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 옛 구억국민학교 일대를 찾았다. 바람난장 가족들은 지난해 이곳에서 벌어졌던 제주4·3의 비극을 기억하기 위해 표지석을 세웠다.

청보리 물결을 건너고 나니 우리는 어느 새 녹음(綠陰) 앞에 서 있다. 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고 썼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짙어진 물감이 막 오월을 채색할 쯤이다. 바람난장 오월의 문을 연 곳은 서쪽 끝 대정읍 구억리. 지금은 흔적조차 아련한 옛 구억국민학교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사명>의 절연한 의지가 리코더를 타고 천상으로 퍼진다. 저 작은 구멍이 넘나드는 세계에 블랙홀처럼 빨려든다. 우리도 모르는 세계로 데려다 놓는 저 화음의 근성. 그래, 그래, 우린 잊지 않았어. 그날의 피맺힌 의 기억들을.

19484·3사건이 터진 지 25일 만인 428.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무장대 총책 김달삼과 김익렬 국방경비대 9연대장은 이곳 서귀포시 구억리 국억국민학교에서 평화협상을 맺기로 한다. 72시간 내 전투 완전 중지, 점차적인 무장대 무장 해제 등의 조항이었다. 그러나 사흘 뒤 51일 오라리 연미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일명 오라리 방화사건이 터진다. 마치 협상이 결렬되기라도 바란 것처럼. 운명은 잔인하게도 불행의 편이었다.

 

정민자 연극인이 피맺힌 영혼의 울음이 담긴 이 곳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평화협상’을 맺기로 했지만 이뤄지지 못하고 결국 오라리 연미마을을 전소시킨 ‘오라리 방화사건’이 터지며 4·3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제주 전역을 삼켰다.
정민자 연극인이 피맺힌 영혼의 울음이 담긴 이 곳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평화협상’을 맺기로 했지만 이뤄지지 못하고 결국 오라리 연미마을을 전소시킨 ‘오라리 방화사건’이 터지며 4·3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제주 전역을 삼켰다.
죽어도 장부의 말은 죽지 않는 법이지 / 한낱 봄 꿈 같은 약속도 약속이라서 /연둣빛 4·28 만남, 그 약속도 약속이라서 // 깃발 따라 짚차 한 대 쏙 들어간 구억초등학교* / 뒷산 조무래기들 꼼짝꼼짝 고사리 꼼짝 / 첫날밤 신방 엿보듯 훔쳐보고 있었다 // 조국이란 이름으로 공쟁이 걸지 말자 / 저 하늘을 담보한 김익렬 9연대장과 김달삼 인문유격대사령관 / 산촌의 운동회 같은 박수갈채 터졌다지 // 불을 끈 지 사흘 만에 다시 번진 산불처럼 // 다시 번진 산불처럼 그렇게 꿩이 울어, 전투중지 무장해제 숨바꼭질 꿩꿩, 오라리 연미마을 보리밭에 꿩꿩, 너븐숭이 섯알오름 <4·3평화공원> 양지꽃 흔들며 꿩꿩, 그 소리 무명천 할머니 턱 밑에 와 꿔엉꿩 // 칠십 년 입술에 묻은 이름 털 듯 꿩이 운다 *4·28 평화회담 장소

-오승철, ‘3일 평화-4·3 두 청년 이야기전문

 

오현석씨가 리코더로 ‘사명’의 절연한 의지를 표현했다. 화음을 통해 그날의 피맺힌 한의 기억들을 표현했다. 작은 구멍이 넘나드는 세계에 블랙홀처럼 빨려든다.
오현석씨가 리코더로 ‘사명’의 절연한 의지를 표현했다. 화음을 통해 그날의 피맺힌 한의 기억들을 표현했다. 작은 구멍이 넘나드는 세계에 블랙홀처럼 빨려든다.

지난 해(2018) 문화패 바람난장은 이곳에 70년 만에 표석을 세웠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공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동백나무를 심고 표석에 글을 새겼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몫인 지도 모른다. 세상은 기억의 원자로 지구를 돌리고 돌아가는 것인지도.

피맺힌 영혼은 어디서 숨죽여 울고 있을까. 구석구석 비명(悲鳴)한 혼을 불러들인다. 양창연 무용가의 살풀이. 하얀 넋을 위로하며 부디 좋은 곳에서 지난 의 기억을 지우고 푸릇푸릇한 오월의 얼굴로 다시 태어나길 기원한다.

 

오현석씨가 리코더로 ‘사명’의 절연한 의지를 표현했다. 화음을 통해 그날의 피맺힌 한의 기억들을 표현했다. 작은 구멍이 넘나드는 세계에 블랙홀처럼 빨려든다.
양창연 무용까 살풀이를 통해 넋을 위로했다. 좋은 곳에서 지난생의 기억을 치우고 다시 생기있는 얼굴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원하면서.

철쭉꽃 핀 동산에서는 사라졌던 조무래기 아이들이 꼼짝 꼼짝 고사리 꼼짝을 노래하며 푸르게 오월을 건너고 있다.

사회=정민자
무용=양창연
플루트=김수연
리코더=오현석
트럼펫=홍석철
시낭송=김정희와 시놀이
사진=허영숙
영상=김성수·홍예
음향=채현철
=김효선
후원=제주특별자치도·제주신보·제주메세나협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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