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은 살면서 언제가 제일 행복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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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건, 제주특별자치도 사회복지협의회 사무국장

“아빠, 벌써 7년이 지났어요”

4월 마지막 날,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둘째가 불쑥 얘기를 꺼낸다. SNS에서 과거의 오늘을 알려주는데 7년 전 오늘 이사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7년 전 일이다.

봄비가 무섭게 쏟아졌다. 당장 내일 이사를 해야 하는데 큰일이었다. 고맙게도 이삿짐 업체에서는 내일 새벽까지 지켜보자고 했다. 조바심하며 맞은 새벽하늘은 밤새 빗줄기를 쏟아놓느라 지쳤는지 잠시 쉬어 가는 듯 시커먼 기운만 무겁게 품고 있었다. 먼 길이 아니라 2시간여 만에 대충 이삿짐을 집 안으로 나를 수 있었다. 일손을 돕던 이들 모두 정말 다행이라며 한 숨을 돌리던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다시 비가 쏟아졌다. 이럴 수도 있을까 싶게 우연찮은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어머니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병원에 계신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다. 이틀 전 바짝 야윈 몸으로 어렵게 숨을 내뱉고 있는 외할머니를 뵙고 온 가족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정리하다만 이삿짐을 뒤로하고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어머니는 창 밖에 쏟아지는 비를 보시며 “그렇게 무섭게 내리던 비가 이사하는 순간에만 그친 걸 보면 가시는 길에 잊지 않고 손자 이사 하는걸 지켜보시고 가신 것 같다”며 말끝을 흐리셨다.

몇 달 후, 서울에 살고 있는 막내 이모의 사고사(死) 소식이 전해졌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해 아쉬워하던 2남 4녀 중 막내딸이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에 가족들 모두 정신을 가다듬기 어려웠다.

좁은 집에서 아들 셋 키우며 살아가는 외아들 부부가 조금 너른 집 한 채 마련해 이사를 하게 된 일을 당신의 일 만큼이나 기뻐했던 어머니는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몇 달 새 어머니와 여동생을 보내야 했다. 그 황망함 속에서도 어머니는 힘들어하거나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 어머니의 모습은 외려 비감어린 곡소리로 들렸다.

7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올해도 어김없이 맞은 4월을 어머니는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만 버텨내고 5월을 맞았다. 일찍 철든 육지에 사는 큰 딸은 이웃들과 밤새 바느질을 해 만든 동백꽃 배지 403개를 보내왔다. 71년 전 4·3에 아비를 잃고 7년 전 4월 30일에 어미를 보낸 어머니의 4월을 위로하고, 4월을 보내야만 비로소 시작되는 어머니의 봄을 축복함이리라.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자신을 위해 평생 눈길을 쓸어 준 이가 어머니였음을 뒤늦게 깨달은 아들이 어머니에게 묻는다.

“어머님은 살면서 언제가 제일 행복하셨어요?” 어머니는 “대단한 날은 아니구, 나는 그냥 그런 날이 행복했어요. 온 동네에 다 밥 짓는 냄새가 나면 나도 솥에 밥을 안쳐놓고 그때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던 우리 아들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가요. 그럼 그때 저 멀리서부터 노을이 져요. 그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그때가”라고 속삭인다.

문득 내 어머니의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생각해 보는데 눈물만 주르르 흘렀다.

오늘은 어머니 무릎에 누워 물어봐야겠다. “어머님은 살면서 언제가 제일 행복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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