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교토 그리고 제주
5월의 교토 그리고 제주
  • 제주신보
  • 승인 2019.05.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영수, ㈜수파드엘릭사 고문/논설위원

몇 해 전 두 번째로 가 본 교토의 5월은 역시 좋았다.

하늘은 푸르고 나무에는 아기 손바닥만 한 여린 잎이 돋아날 날 무렵, 나는 먼저 버스를 타고 청수사 정거장에서 내렸다. 산넨자카의 오래되고 아기자기한 가게들,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커피숍, 신록이 가득한 청수사를 둘러보았다.

늦은 점심은 지하철을 타고 550여 년 전통의 소바집을 어렵게 찾아 감격스럽게 먹었고, 저녁에는 ‘교토의 부엌’이라고 불리는 니시키 시장과 기온 거리를 헤매다 결국 고등어 초밥과 맥주를 사서 카모카와 강변에 앉아 해결했는데, 석양빛에 총총걸음으로 걸어가는 마이코상(게이샤 수련생)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5월 교토는 그리움의 대상인데, 왠지 요새 돌아가는 낌새는 이런 생각을 쉽게 드러낼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정치적으로 친일은 아직도 청산해야할 적폐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국민 간의 문화 교류는 여전히 활발하고 의외로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일본풍을 좋아한다. 서울의 홍대 앞, 익선동 등지의 맛집, 술집 등도 일본 스타일이 점령하고 있다.

2018년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750만 명, 한국을 찾은 일본인 300만 명의 2배를 넘고 있다. 소위 친일파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말이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사 연구를 오래해 온 마크 피더슨 박사는 미래를 위해 “한국인은 역사적 피해의식을 버려라.”라고 고언하고 있다. 80여 년이 지난 일제강점기에 대해서 지나친 피해의식을 갖는 것이야 말로 일제 식민 사관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제주인은 여러 가지 사유로 일본에 건너갔다. 오사카 지역에 주로 살며 해방직후, 그분들이 송금한 돈은 당시 곤궁한 제주 지역 살림에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우리나라가 반세기 만에 세계 경제사에 유례없는 성장을 이룩한 배경에는 일본으로부터 배우고, 일본 기술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 했다. 세계 최고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핵심 설비들은 아직도 거의 다 일제이다.

국가 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고, 현재의 실익이 아닐까? 아니 꼽고 성미에 맞지 않더라도 그것을 감추고 겉으로 미소 짓는 것이 국제간의 관계가 아닌가?

일본 사람들도 한국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교토 여행 후 돌아오면서 아내 옆에 탄 일본인 여성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서울에 온다고 했는데, 이유는 한국 남자가 멋있기 때문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제주는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오랜 기간 동안 영향을 받으며 살아 왔다. 케이블 TV가 없던 시절에는 지역에 따라 한국 방송 보다 일본 방송이 더 잘 나오기도 했다. 섬이라서 자연 환경도 비슷하다. 일본과 가깝게 지내면 좋은 점이 부가가치가 높은 일본 관광객이 늘어날 수 있기도 하지만, 농수산물 산업의 경쟁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측면도 크다.

최근 제주 광어 가격이 생산원가를 밑도는 수준으로 떨어진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으나, 호황기에 경쟁력을 끌어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일본과의 교류를 더 활성화 시켜 세계 최고 수준의 일본 양식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품질 좋은 광어를 출하할 수 있을 것이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일본에는 제주인의 좋은 네트워크가 있다. 한일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적극적으로 다가선다면 제주의 독자적인 관계 개선 노력이 돋보일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