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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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진 수필가

글씨 교정 공부가 유행이라는 인터넷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컴퓨터와 휴대 전화에 능숙한 지금 ‘웬 손 글씨?’ 하며 찬찬히 읽어 내렸다. 손 글씨를 쓰면서 스트레스 푸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과 SNS에 손 글씨로 쓴 일기를 사진 찍어 올리는 게 자랑거리가 되면서 관심이 커졌다는 내용이었다.

속도가 경쟁력인 시대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기삿거리였다. 우리 때야 펜을 잡고 긁적이는 게 일상의 행위였는데, 일종의 취미 생활이라니.

빠른 변화에 대한 몸부림일까. 자고 일어나면 또 다른 낯섦과 마주해야 하는 현대사회의 이 흐름에 우리의 의식은 따라가기 버거워한다. 앞만 보고 질주하다 문득 느끼게 되는 헛헛함.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회귀하듯 옛것에 눈을 돌리고 있는지 모른다. 다시금 패션, 음식, 인테리어, 팝송 등등에서 새로움(new)과 복고(retro)가 합쳐진 ‘뉴트로’라는 새로운 복고 트렌드가 떠오르고 있는 것도 그 이유가 아닐는지.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도록 만들어졌다 한다. 손 글씨 또한 활자화된 글자가 더 익숙한 시대에 포기할 수 없는 감성이다. 내 안에 숨어 있던 감정과 생각들을 끄집어낸다.

손 글씨에는 그 사람의 향기가 있다. 차분히 꾹꾹 눌러쓰거나 무엇이 바쁜지 날개 단 듯 성급함이 드러난 글씨, 한 획 한 획에 힘이 들어가 자신의 주장이 묻어나는 글씨 등 첫인상처럼 성격을 가늠할 수 있는 상상력을 준다.

어느 작은 페인트 가게의 손으로 쓴 ‘ㅇㅇ네 페인트’라는 간판이나, 동네 골목길을 걷다 만나는 큼직한 손 글씨- 문패 대신 자신의 이름을 한쪽 벽면에 써넣었다. 발길을 멈춘다. 인간관계처럼 반듯한 것보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어 더 정겹다.

디지털 기기가 주는 편리함이 축복인 오늘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아날로그적인 것을 그리워한다. 감동이 있어서다. 울림은 작은 것일수록 온몸으로 퍼진다.

또래 아이보다 모든 게 더딘 아들이 처음 쓴 이름에 직장 동료는 온종일 벅참을 감추지 못했다. 어쩌면 그녀에겐 그 어떤 글씨보다 명필이었지 않을까.

내게도 그런 게 있다. ‘어머니’라고 작고 삐뚤게 쓰여 있는 부조 봉투. 오래전 시어머니에게서 어떤 연유로 받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단지 그 글씨에서 느꼈던 뭉클함만 남아 있다.

학교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어머니의 글씨체. 글자 크기로 줄을 세운 듯 ‘어’ 자가 가장 크고, ‘ㅇ’인지 ‘ㅁ’인지 모를 ‘머’ 자의 초성은 호흡을 멎은 듯 조심스레 써 내려갔다. 그러다 ‘니’ 자에서 그 긴박함을 내려놓았는지 옆으로 기울기가 심하다. 비록 세 글자이지만 ‘어머니’라는 큰 그릇에 담은, 어느 긴 글보다 코끝을 찡하게 한 마음이었다.

요즘 우리는 마음의 여유를 잊고 산다. 생각할 틈도 없이 실시간으로 문자를 주고받는 게 보편화되었다. 편지통을 들추면 활자화된 안내서나 이런저런 청구서들이 각박한 삶처럼 건조한 채 들어있다. 사람 냄새가 없다.

손 글씨에 눈길을 주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형화된 틀 속에서 삶의 밀도를 높여 줄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으로서 필요충분조건을 갖춘 것 중 이만한 게 있을까 싶다. 더욱이 손 글씨만의 매력은 여전히 진행형이므로.

만약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싶다면 손 편지를 써 보자. 깜짝 놀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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