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용천수가 있어 삶이 유지됐다…제주人의 ‘생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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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평동 수수물…큰 물통처럼 물이 나와 ‘수수천’·‘행기못’ 전설 등 매우 신성시 돼
대흘리 원물…물의 북쪽에 원이 있어 ‘원물’·척박함 속에도 주민에 여유 줘
수수물(사진 왼쪽)과 원물이 나오는 샘의 입구. 이 타원형의 샘에서 끊임 없이 샘이 솟아 제주인들의 생명수로 이용됐다.
수수물(사진 왼쪽)과 원물이 나오는 샘의 입구. 이 타원형의 샘에서 끊임 없이 샘이 솟아 제주인들의 생명수로 이용됐다.

제주인들의 삶의 구심점이었던 용천수. 용천수는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에 제주인의 생명수 역할을 했다.

용천수가 있었기에 촌락이 유지됐으며 농업과 목축이 가능했다.

각종 개발 사업으로 사라지거나 수량이 줄어든 곳이 상당하지만 아직까지도 마을의 요긴한 생명수로 전해지며 고향의 상징과 같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제주시 아라동 영평초 북쪽 영평하동 가시내물천 주변 연화사에서 솟고 있는 수수물. 샘은 돌담으로 사방이 둘러친 인공 동굴 안에 있다.
제주시 아라동 영평초 북쪽 영평하동 가시내물천 주변 연화사에서 솟고 있는 수수물. 샘은 돌담으로 사방이 둘러친 인공 동굴 안에 있다.

영평동 수수물=제주시 아라동 영평초등학교에서 약 1500m 북쪽 영평하동 가시내물천 주변에 있는 연화사 바로 근처에 수수물이라는 샘이 솟고 있다. 이 물은 수수물, 수소못물 또는 산물이라고 불린다. 수수물은 큰 물통처럼 물이 많이 나와서 칭해졌다고 전해진다.

수수못물이라고도 부르는 것은 물이 마르는 일 없이 늘 일정한 양으로 솟아 나오기 때문이다. 산물이라는 것은 계속 솟아 나오기 때문에 살아 있는 물이라는 뜻이다.

샘은 돌담으로 사방이 둘러친 인공 동굴 안에 있다. 조그만 출입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야 샘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다. 샘이 마치 동굴 안에 있는 것처럼 보여 신비함도 느껴진다.

바위틈에 솟는 물을 조그만 통을 만들어 고이게 하고, 넘치는 물은 좁은 수로를 따라 빠지게 했다. 물통은 반경 1.5m 정도의 약간 찌그러진 반원형이며 물허벅을 담글 수 있는 정도의 깊이로 식수만 뜰 수 있도록 했다.

샘 주변에는 물팡으로 썼을 관람석 모양의 계단이 2단으로 남아있다.

수도가 가설되기 전까지 봉개, 월평, 용강동 주민들까지 이용했던 일대의 귀한 식수로 지금은 이웃한 영천암에서 울타리를 쌓고 벽과 지붕을 설치하는 등 관리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곳을 수수천이라고 부르며 매우 신성시하고 있다. 샘이 솟고 있는 동굴 안 누군가 기도하기 위해 촛불이 켜져 있거나 타올라 그을린 흔적이 이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서귀포시 서홍동의 지장샘처럼 수원이 마르지 않고 남아있는 제주의 샘마다 호종단형 설화가 있는 것처럼 수수물에는 꼬부랑나무 아래 행기물이란 행기못전설도 전해오고 있다.

 

제주시 조천읍 대흘리 꾀꼬리오름 북쪽 기슭에 위치한 원물. 돌담이 둘러지고 벽이 다듬어진 타원형 안에 샘이 있다.
제주시 조천읍 대흘리 꾀꼬리오름 북쪽 기슭에 위치한 원물. 돌담이 둘러지고 벽이 다듬어진 타원형 안에 샘이 있다.

대흘리 원물=제주도의 물은 크게 용천수와 봉천수로 구분된다. 산간 지방에는 봉천수가 대부분이며 용천수가 매우 드물다. 원물은 봉천수처럼 보이지만 가늘게나마 샘이 솟아나 고인 샘물이다.

원물이라는 이름은 이 물의 북쪽에 원(·국가에서 운영하는 여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을 중심으로 조그만 마을이 이루어졌으며 주민들은 이 물을 생명수로 활용했다. 꾀꼬리오름(해발 428m)은 원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원오름이라고도 부른다.

꾀꼬리오름은 분화구 내에도 동쪽에서 작은 샘이 흘러나오며 그 물이 분화구 가운데를 적셔 밭으로 이용할 수 있었는데 오름에서 모여진 물이 이곳으로 나왔던 것이다.

잡목이 우거진 가운데 돌담이 둘러지고 벽이 다듬어진 이 샘은 2m 가량의 타원형으로 이뤄졌다.

원물이 위치한 이곳은 고려시대 보문사라는 절이 있었던 터로, 음용수로 활용됐다. 조선시대 때는 원동마을 주민들이 음용수로 즐겨 사용했다. 대흘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원물은 아무리 가물 때나 비가 많이 왔을 때에도 항상 물의 양이 일정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인근 중산간 마을 주민들이 척박한 땅을 일구면서도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원물 덕이 크다고 평한다.

한때 방치상태에 놓였던 이곳은 제주의 수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대흘리 주민들의 관리하에 마을의 또 다른 휴식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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