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돌두꺼비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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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길 수필가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마음은 우리 인간에게만 있는 것일까?

거실 탁자위에 주먹만 한 먹돌두꺼비가 좌대위에 앉아있다. 생기生氣를 불어 넣으면 펄쩍 뛰어오를 것만 같다.

 

70년대 초 탑동에 거주하면서 탑동 바닷가를 자주 거닐었다. 밀물 때면 밀려오는 파도가 발아래 출렁이다가 썰물이 되면 멀찍이 빠져나가 그 넓은 해변은 온통 크고 작은 돌멩이로 채워져 장관을 이루었다.

당시 나는 수석壽石에 관심을 갖게 되어 시간이 나면 가끔 탐석에 나서곤했다. 어느 날 오후 탑동 바닷가에서 탐석을 하던 중, 눈에 띄는 먹돌이 있었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유심히 살펴보니 두꺼비 형체와 너무 닮은 것이 아닌가.

아주 단단하고 광택이 나는 새까만 제주먹돌이라 최고의 질로 높게 평가될 뿐만 아니라 두꺼비는 장수와 행운을 상징한다는데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나는 설레는 가슴을 안고 조심스레 집으로 들고 왔다. 대야에 담가 염분을 제거하고 마른 수건으로 정성껏 닦아 동백기름으로 윤을 낸 후 좌대를 주문하여 그 위에 앉혔다. 바라볼 때마다 흐뭇하여 내가 가장 아끼는 수석이 되었다. 이후 40여 년간 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도 늘 나와 함께했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을 지나면서 여느 때와 다른 표정의 느낌을 받았다. 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일까. 나는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가 대화를 나눠 보기로 했다.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면 나를 내려놓고 하나가 되어야한다.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그의 영혼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얼마 후 한라수목원을 산책하던 중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기도하는데 간곡하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40여 년간 단조롭고 답답한 아파트생활에 실증이 나서 일까, 내 자신도 모르게 저지른 잘못된 언행을 세세히 지켜보다가 실망해서 인가, 아니면 왜 나를 이곳으로 데려 오셨소?’라고 나를 원망하고 있는 것인가. 어쨌든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탑동 바닷가로 가고 싶은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렁거리는 바다소리가 그립고, 밀려오는 파도에 부딪치며 놀던 벗들이 보고 싶었으리라. 바릇잡는 순박한 아낙네들의 재잘거림도 귓전에 맴돌고, 등위로 우물우물 기어 다니는 게 보말 우렁이의 촉감도 생생하리라. 또한 해녀들의 숨비소리도, 아기 때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도 잊지 못하고 있으리라.

 

그런데 두꺼비가 살던 탑동 해변은 오래전에 매립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으니 이 어찌하리. 그의 부르짖음은 매립되어 콘크리트 무덤이 된, 잃어버린 자연을 돌려달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아닌가.

조지 버나드 쇼가 부끄러운 짓을 할 때마다 그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목청을 높이는 어리석은 인간들라고 말한 것처럼, 두꺼비도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신이 사랑으로 창조한 자연을 인간의 탐욕으로 파괴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이 따를 것이다.’

 

탑동 매립지 뚝 위에 앉았다.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깊은 상념에 빠져 들어갔다. 나의 존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내 영혼이 안식할 영원한 나의 고향은 어디인가. 두꺼비의 애달픈 목소리가 아련히 들린다. 그는 온 생명을 품어주는 바다의 품이 그리워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누가 이 울고 있는 두꺼비를 껴안아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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