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찬란하면서도 아프다
오월은 찬란하면서도 아프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③구억리 옛 구억국민학교(下)
무자년 제주섬의 슬픔과 恨을 시와 음악으로 풀어내
'사는 게 몬딱 죄 아니우꽈 신부님 하느님께 골아줍써'
유창훈 作, 살풀이춤. 제주의 봄은 찬란한 슬픔의 봄이다. 바람난장 문화패가 4·3으로 스러져간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옛 구억국민학교를 찾았다.
유창훈 作, 살풀이춤. 제주의 봄은 찬란한 슬픔의 봄이다. 바람난장 문화패가 4·3으로 스러져간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옛 구억국민학교를 찾았다.

오월을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고 한다. 찬란과 슬픔의 반어법으로 오월은 눈부시게 살아있다. 그렇게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의 구억리는 구억만 개의 빛이 쏟아지는 듯했다. 우리가 부르지 못한 영혼들이 이렇게 빛으로 쏟아지는 걸까. 찬란한 빛은 모든 사물의 외양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눈에 보이지 않던 티끌까지도.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보이지 않는 슬픔마저 똑똑히 기억하라고.

김수연 플루티스트가 비발디의 사계 ‘봄’을 연주했다. 플루트가 바람을 타고 내려와 영롱하고 순결한 빛의 속삭임을 들려줬다.
김수연 플루티스트가 비발디의 사계 ‘봄’을 연주했다. 플루트가 바람을 타고 내려와 영롱하고 순결한 빛의 속삭임을 들려줬다.

비발디의 사계 이 김수연님의 플루트에서 바람을 타고 내려온다. 영롱하고 순결한 빛의 속삭임. 모든 생물의 자양분이 오월에 집중되어 있다. 꽃봉오리를 눈 뜨게 하는 것도 엽록소가 제 빛깔을 찾아가는 때도 오월이다. 숲이 제 모습을 찾는 계절. 최상돈 작곡의 애기동백꽃이 화음을 타기 시작하자 바람난장에 모인 사람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두 개의 화음이 아니 세상 모든 화음이 자기 목소리를 찾기 시작한다.

김정희와 시놀이가 무자년 아픔과 한을 시낭독으로 풀어냈다. 이 땅에 묻힌 비애를 잔잔히 위로하듯이 그들의 목소리가 낭랑히 울려퍼졌다.
김정희와 시놀이가 무자년 아픔과 한을 시낭독으로 풀어냈다. 이 땅에 묻힌 비애를 잔잔히 위로하듯이 그들의 목소리가 낭랑히 울려퍼졌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다. 세 사람이 입을 맞추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뒷담화는 그만큼 발이 빠르고 힘이 세다. ‘무자년 그날의 아픔을 가슴에 묻고 사는 한 여인의 말 못할 이 김정희와 시놀이팀의 애타는 목소리로 전해진다.

무자년 그날
남편과 젖먹이 아들 앞세우고
독신으로 살아온
마리아 자매님이 최근
평신도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교회가 정한 형식과 제도마저
깡그리 생략했을 법한
초고속 고해성사 때문이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억측 참다못해 이유를 여쭸다가
맥없이 주저앉은
신도 분명 나처럼 눈물바람일
 
성호 그서그넹
사는 게 몬딱 죄 아니우꽈
신부님 알앙 하느님께 골아줍써
-손세실리아, ‘알앙 골아줍써전문

결국 사는 게 몬딱 죄 아니우꽈라는 문장으로 가슴에 맺힌 버거움을 묻는다. 마음을 비우지 않고서는 삶을 지탱할 수 없다. 여기저기 떠도는 말로 삶을 허비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종교 안에서마저 허락하지 않는 뒤틀린 마음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죄가 시작된다고 했던가. 그러니 우리는 모두 유죄다. 그러니 없는 호랑이까지 불러내며 죄를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홍석철 트럼페티스트가 잠들지 않는 남도를 연주했다. 곡진함이 트럼펫을 타고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홍석철 트럼페티스트가 잠들지 않는 남도를 연주했다. 곡진함이 트럼펫을 타고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라’(잠들지 않는 남도)의 곡진함이 홍석철님의 트럼펫을 타고 구석구석 스며든다. 잠들지 못하는 땅, 그러나 평화는 반드시 이긴다. ‘Song Of Peace’가 이 땅에 묻힌 비애를 간절한 소리로 화합하길 빈다. 평화는 일렁이는 욕망을 잔잔하게 가라앉게 하는 마음이다. 지난 아픔을 토닥여주는 오월의 햇살로 우주의 한 축은 또 돌아간다.

사회=정민자
미술=유창훈
무용=양창연
플루트=김수연
리코더=오현석
트럼펫=홍석철
시낭송=김정희와 시놀이
사진=허영숙
영상=김성수·홍예
음향=채현철
=김효선
후원=제주특별자치도·제주신보·제주메세나협회 등

다음 바람난장은 제주시 건입동의 동자복과 서자복 일대에서 펼쳐집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