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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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오래전 이야기다. 지금처럼 봄꽃과 실록으로 눈부시던 5월 어느 날, 해변을 걷다 다리도 쉴 겸 인근 정자에 들었다. 마침 노부부가 마주 앉아 한담을 나누며 쉬고 있었다.

“같이 앉아 쉬어도 될까요?”

“예, 어서 오십시오. 저희도 길을 걷다 쉬고 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자 다과까지 권한다.

“참, 행복하게 사시네요. 부럽습니다.”

“내 나이 이제 칠십 후반인데 이제야 사는 맛을 어렴풋이 느낀다오.”

“젊은 시절의 삶이 아무래도 좋지 않겠어요?”

“사람마다 삶에 대한 생각이나 사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내 젊은 시절은 오직 직장밖에 모른, 직장을 핑계로 가정을 외면한 삶이었어요.”

“우리 시대의 남자의 젊은 시절이야 대부분 그랬지요. 뭐.”

“남의 삶이 그러하다고 내 삶이 긍정되지는 않지요. 돈, 친구, 지위, 명예 따위를 탐해 스스로를 욕망의 굴레에 가둬놓고 허상을 좇아 허둥댔으니 그것은 제대로 산 삶이 아니었어요. 이제 그 욕망의 굴레에서 헤어났으니 성장과정에서 거들떠보지도 못했던 자식들에게 맘껏 사랑도 주고, 부부가 함께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신나게 뛰어놀아야지요. 그런다고 그 시절을 보상받거나 보상해 줄 수는 없겠지만….” 빙그레 웃으시더니, “노년은 삶을 즐겨야 해요!” 자신에게 각인함인 듯, 나에게 타이름인 듯 힘주어 다시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그 후 십 년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 때의 이야기가 아직도 내 안에서 떠나질 않는다. 아마도 삶을 즐기라는 그 말의 파장이 내 안에 공감의 똬리를 튼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공유하며 사는 오늘의 삶들은 어떤가. 행복이라는 같은 지점을 향한 삶의 행진이지만 그 끝은 천차만별이다. 시류를 좇아 행복의 허상을 잡으려 해보지만 누구에게나 뜻대로 잡히지도 않고. 삶을 즐기는 것도 다르지 않은 듯하다. 삶을 즐기려면 다소의 경제적인 여유나 시간과 건강, 욕심을 비워낸 마음의 빈자리까지 필요한데 그것도 누구에게나 쉬 주어지지 않는다. 노년에 이러서야 그런 삶의 조건이 충족된다고들 하니 ‘노년의 삶은 즐겨야한다’던 노부부의 말이 이제야 마음에 와 닿는다.

그런 노년의 삶도 이제는 치열하다. 직장 때문에 마음에 담아두었던 일을 찾아 매달리고, 새로운 친구 사귀기나 취미활동에도 경쟁적이다. 심지어 젊은 시절 쟁취하지 못했던 명예까지 거머쥐려 가쁘게 뛰어다닌다. 즐김과는 거리가 먼 삶들이다.

삶을 즐기려면 성취보다 그 욕망을 비우라 한다. 나와 마주하는 세상사를 오직 즐김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때로는 힘들고 아쉬울 때도 이해타산을 떠나 즐거운 감정으로 마주하며, 산이 좋으면 산에 오르고, 물이 좋으면 강이나 바다로 나가 즐기라 한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 죽는 날까지 일을 즐기고, 자신의 일을 통해서 명예나 경제 외적인 의미로 인생의 깊이를 더하며 살라 한다.

그런 비움의 삶들이야말로 즐김의 경지를 넘어선 행복이며, 아름다움이다. 내 인생과 내 일을 조건 없이 사랑하며 즐기는 노년의 삶, 그것은 시류를 쫓는 그 어떤 삶이나 자신의 욕망을 위해 열정과 노력으로 땀 흘리는 청춘의 삶보다 더 우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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