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野火祝祭/庚韻(들불축제/경운)
(142) 野火祝祭/庚韻(들불축제/경운)
  • 제주신보
  • 승인 2019.05.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作詩 知山 李鍾禹(작시 지산 이종우)

歷史千年邃 역사천년수 천년의 깊은 역사 속에/

當時劇虜平 당시극노평 당시에는 오랑캐를 평정함인데/

病虫防始覺 병충방시각 병충해 방지됨을 알게 되어/

牧畜火田耕 목축화전경 목축과 화전을 일굴 전초로 활용하였네/

過去民生手 과거민생수 과거에는 민생의 수단이었으나/

至今觀客迎 지금관객영 지금은 관광으로 각광을 받아/

六洲人總集 육주인총집 육주의 인파가 운집한 속에/

星岳瑞光明 성악서광명 새별오름에 상서로운 불꽃이 피어오르네/

주요 어휘

=깊을 수. 시간이 오래되었음을 의미함 劇虜(극노)=심한 약탈. 심할 극/노략질할 노/되놈 노 病虫防始覺(병충방시각)=화입(火入)이 병충해 방지에 효과가 있음을 깨달음. 질병 병/벌레 충/막을 방/처음 시/깨달을 각 牧畜火田耕(목축화전경)=목장이나 화전 밭을 일굴 때는 먼저 화입(火入)하였음. 메길 목/기를 축/불 화/밭 전/밭갈 경 六洲(육주)=오대양(五大洋)과 육대주(六大洲). 여섯 육/섬 주 人總(인총)=많은 사람. 사람 인/모일 총 星岳(성악)=신성악(晨星岳)을 줄여 썼음. 새별오름의 준말. 별 성/새벽 신

해설

들불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을 약기하면 다음과 같다.

1270년대 여몽(麗蒙)연합군이 김통정(金通精)의 항거를 평정한 후, ()은 제주에 동서아막(東西阿幕)을 설치하고 목마장(牧馬場)으로 삼았다. 그런데 평소 목마장을 관리하는 목호(원나라 목동)들은 횡포가 심하였다. 1360년대 말 원()이 망하고 명()나라가 중원(中原)을 석권하였음에도 목호들은 명()과 고려(高麗)에 항거하였다. 그러던 중 1370(공민왕 19) 고려는 제주의 말을 명나라에 보내려 하자, 목호들은 우리 세조황제(世祖皇帝)가 방축(放畜)한 말을 적인 명나라에 보낼 수 없다.”라 하여 소란을 일으켰다(牧胡).

이에, 고려에서는 최영(崔瑩)장군을 도통사에 임명하고 전선(戰船) 314, 예졸(銳卒) 25600여 명을 추자도에 절진하여 전략을 세우고, 후풍(候風) 끝에 명월(明月)포로 상륙하여 공격하였다. 목호들은 새별오름에 집결하여 강력 항거하였으나 최영장군은 사방으로 불을 놓아 전승을 거두었다.

이후 제주민들은 방화된 곳에서 새로 돋아난 풀을 마소들이 즐겨 선호함을 알게 되었다. 또한 진드기 피해를 막는 데에도 효과가 큼을 깨달아, 매년 이른 봄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목장에 화입(火入)을 행하였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에는 산야(山野)의 조림(造林)사업으로 화입(火入)이 엄격하게 규제되어 지금은 볼 수 없는 광경이 되었다.

이 과정을 상기해보려고 서투르게나마 경()자 운()으로 작시(作詩)하여 보았다.

<해설 지산 이종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