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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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공원이 봄 단장으로 부산스럽다. 운동장에 잔디보다 더 무성하던 잡초와 토끼풀을 걷어내고 새 잔디를 입혔다. 가뭄이 길어 걱정했는데 밤새 내린 비로 싹이 부쩍 자랐다.

비자나무와 너도밤나무, 굴거리나무는 가지치기로 후줄근하던 것이 인물 좋은 청년처럼 준수해졌다. 비자나무는 애초 공간을 넓게 잡아 심었더라면 좋았을걸. 밀식해 심은 탓에 맘껏 가지를 뻗지 못하고 비쩍 마른 채 허우대만 키우고 있었다. 거목에겐 충분한 햇빛과 바람이 좋은 조건이라 볼 때마다 답답했었다. 숲만 키울 게 아니라 둥치가 굵어야 훌륭한 재목이 될 수 있다. 사람도 이웃 간에 서로 침해받지 않을 공간이 필요한 것처럼, 나무도 생존 환경으로 넓은 터를 주었어야 했다.

해마다 대로변 인도 한쪽에 조그마한 화단을 만들어 철 따라 꽃을 심어 단장한다. 삭막한 도시 한 귀퉁이를 환하게 밝혀 오가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수입종이나 개량종으로 우리 토종 꽃을 보긴 쉽지 않아 아쉽다. 하지만 글로벌 시대에 꽃이라고 다를 수 있으랴. 앞으로는 국적과 인종을 가리지 않고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이라는 말도 이젠 옛말이다. 국제결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결혼이주민들이 곳곳에 가정을 이루고 산다. 그들이 있어 인구감소시대에 몫을 하지 않나. 인력난에 허덕이는 현장에선 외국인 근로자가 부족한 일손을 보태고 있다. 편견 없이 따뜻이 품어야 공존하며 살 수 있는 길이다.

꽃이나 나무는 심는 것 못지않게 가꾸는 일도 중요하다. 해마다 여름 가뭄으로 고생하는 것들이다. 타들어 가는 갈증으로 허덕일 때 도로변 화단의 꽃 처지도 사람과 다르지 않다. 먼지 뽀얗게 뒤집어쓴 채 목마르다고 소리 없이 아우성치는 것 같아 측은하고 안쓰럽다. 어쩌다 우리 사회는 한 바가지의 물조차 그들에게 베풀 여유가 없을 만큼 각박한 것인지. 동네 주민이 관심을 기울인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다. 누렇게 시들어 죽고 오가는 이의 발길에 짓밟혀 꽃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거기다 담배꽁초며 오물까지. 이럴 바엔 차라리 심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

공원 숲은 늦은 전정 작업이 한창이다. 베고 자른 나뭇가지들이 수북이 쌓였다. 동강 난 가지에선 달착지근한 향기를 흘려 상큼하고 싱그럽다. 뭉텅 잘린 겹벚꽃 가지에 채 피우지 못한 꽃봉오리가 시들어 간다. 일 년 동안 품은 꿈이 채 피우지 못하고 무참히 뒹굴고 있다.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꽃가지 한 움큼 간추려 들었다. 오지항아리에 꽂으면 혹 꽃이 필까 하고.

응달진 산책로에 늦둥이 겹동백꽃이 한창이다. 누굴까. 발길에 짓밟힐까 안쓰러웠는가. 며칠 전부터 산책로 경계석 따라 붉은 꽃 한 송이씩 올려놓곤 한다. 비 온 후라 떨어진 붉은 꽃이 더 처연하다. 왠지 감성이 예사롭지 않을 것 같다. 마음 씀이 꽃같이 고울 것 같은, 걷다 멈추다 나도 따라 마음을 보태며 그 주인공을 그린다.

흔히 큰 것에 집착하다 정작 소소한 작은 것의 귀함을 놓치고 만다. 무심히 지나쳐 보지 못할 뿐이다. 자세를 낮춰 겸허해야 얻을 수 있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올 때 더 가슴을 울린다. 나밖에 몰라라 하는 세상에 남을 생각하는 소소한 배려조차 그리운 시절 아닌가. 오지항아리에 꽂아 둔 겹벚꽃이 만개했다. 입가에 종일 미소가 따라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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