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정상,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1977년 9월 15일 낮 12시50분 군용 무전기를 타고 흘러든 한 사나이의 한마디는 전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전 세계에서는 56번째로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해발 8848m) 등정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세계 8번째 에베레스트 등정국이 된다.
제주 출신 산악인 고상돈(1948~1979). 그는 그렇게 전설이 됐다.
29일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40년째 되는 날이다. 한때 국민 영웅으로 대접받던 고상돈이지만, 오늘날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계 최고봉을 향한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원정대 1차 공격조가 28개의 산소통을 다 쓰고도 정상에 오르지 못하면서 2차 공격조인 고상돈의 등정은 불투명했다.
그러나 산 기슭에서 프랑스 원정대가 버리고 간 12개의 산소통을 발견한 게 행운이었다.
고상돈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약 1시간 동안 머물며 1976년 설악산에서 동계훈련을 하다 숨진 최수남과 송준송, 전재운의 사진을 만년설에 묻었다.
‘한국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이란 타이틀과 함께 금의환향한 고상돈은 그 해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으며 국민 영웅이 됐다.
파장은 상당했다. 교과서에서 정상에 올라 태극기를 든 고상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고, 그의 얼굴이 담긴 기념우표와 주택복권, 기념담배까지 출시됐을 정도였다.
대한산악연맹은 그의 쾌거를 기념해 9월 15일을 ‘산악인의 날’로 지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상돈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2년 뒤인 1979년 이번엔 북미 최고봉인 맥킨리(해발 6194m) 등정길에 오른다.
아내 이희수씨는 3개월 된 뱃속 아기와 함께 매일 불공을 드리며 남편의 무사생환을 기원했다.
그 해 5월 29일 이일교, 박훈규와 함께 마지막 캠프를 출발한 고상돈은 마침내 맥킨리 등정에도 성공한다.
정상에서 고상돈은 “바람이 너무 세고, 추워서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사진을 찍고 하산하겠다. 지원해준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라며 쾌거를 알리는데, 이 말은 곧 그의 유언이 됐다.
고상돈은 맥킨리 하산 도중 이일교와 1000m 아래로 떨어져 만 29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의 유해는 미국 원정대에 의해 발견돼 산악인의 꿈을 키웠던 한라산 1100고지에 영원히 잠들었다.
고상돈의 에베레스트 등정은 국민에게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줬고, 훗날 한국 산악을 이끈 故 박영석, 엄홍길 등 걸출한 후배들을 배출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고향인 제주에는 그의 뜻을 기리는 기념관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1970년 일본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우에무라 나오미는 그의 고향인 효고현과 도쿄도 이타바시구에 그의 이름을 딴 기념관과 모험관이 있다.
히말라야 16개좌 정상에 오른 엄홍길도 고향인 경남 고성군과 경기 의정부시에 기념관이 건립됐다.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영석 역시 서울 마포구에 기념관이 있다. 그러나 정작 이들에게 산악인의 꿈을 키워 준 고상돈의 기념관은 아직까지 없는 실정이다.
약 10년 전부터 기념관 관련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긴 했지만, 실제 건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981년 유가족이 제주도에 기증한 고상돈의 등산 장비와 등정 사진, 에베레스트 정상 암석 등 유품 674점은 현재 한라산국립공원 산악박물관에 전시 중인 47점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 전시돼 있는 일부를 제외하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수장고에 갇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고상돈기념사업회가 2010년 제주시 어승생 삼거리에서부터 서귀포시 옛 탐라대 입구 사거리까지 약 18㎞ 구간을 ‘고상돈로’로 지정하고, 매년 11월마다 이곳에서 고상돈로 전국걷기대회를 여는 등 그의 업적을 알리고자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양봉훈 고상돈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제주지역 국회의원들도 국비 재원 확보 등 기념관 건립을 적극 돕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데, 가장 앞장서서 추진해야 할 제주도는 정작 뒷짐만 지고 있다”며 “고상돈 타계 40주년이 산악인들의 조촐한 추모로 끝나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고(故) 고상돈 산악영웅 제40주기 추모제’는 29일 오후 3시 그가 잠들어 있는 한라산 1100도로 고상돈 기념비 앞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