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족보 구하기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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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업, 전략사업본부장 겸 논설위원

족보(族譜)는 한 가문의 혈통과 계통관계를 부계(父系) 중심으로 기록한 책이다. 그 시초는 중국으로, 한나라 시대 왕실의 제왕연표(帝王年表)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고려 중기 의종 때 김관의가 지은 왕대종록(王代宗錄)이 최초이지만 전해지지는 않는다.

족보는 자신의 존재와 뿌리, 조상의 내력을 알려준다. 거기엔 한 가문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발자취가 담겨 있다. 이를 통해 당대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족보는 ‘한 집안의 역사책’이다. 오랫동안 한국인들이 족보를 신줏단지처럼 모셔온 이유일 게다.

▲한데 족보의 쓰임새는 사전적 정의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 의미가 확장돼 서열로서 나이·직급을 뜻하기도 한다. 누가 ‘위’이고 누가 ‘아래’인지 상하관계를 확인하고자 할 때 우리는 대체로 ‘족보를 따진다’고 한다. 비슷한 말로 ‘민증 깐다’는 표현도 있다.

화투·플레잉 카드 등을 사용하는 도박에서 점수가 성립되는 패를 정의해둔 리스트를 칭하기도 한다. 화투 2장의 숫자를 조합해 만든 섰다에서 가장 높은 족보는 ‘장땡’이다. 그런가 하면 특정 집단의 역사를 가리키는 속어로도 활용되곤 한다.

▲족보는 각종 시험의 기출문제나 모범 답안, 그리고 시험 출제 경향을 정리한 자료 또는 수업 내용의 요약본을 이르는 은어로도 쓰인다. 퀴즈 게임에서 출제되는 문제와 답을 모조리 모아 놓은 목록을 일컫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대학가는 물론 초·중·고교 등에서 암암리에 통용된다.

이는 족보만 있으면 시험 범위 전체를 공부하느라 고생하지 않고도 좋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있고 없음에 따라 그 차이가 상당히 커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허나 아무나 가질 수 없다. 그러니 시험이 닥치면 너나 할 것 없이 ‘족보 찾기(?)’에 혈안이다.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둔 요즘은, 도내 대학생들 사이에선 이른바 ‘족보 구하기 전쟁’이 한창이라고 한다. 그 과정서 돈이 오고 가기도 한다. 예컨대 한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사이트에선 족보를 사고 파는 게시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는 전언이다.

대학가 시험 풍속도다. 하지만 현금 거래는 엄연한 불법이다. 적발돼 저작권 침해로 인정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그럼에도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과거 기출문제나 같은 패턴의 문제를 내지 않으면 해결될 텐데, 그게 쉽지 않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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