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 속의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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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순, 문학박사/논설위원

올해 초부터 대한민국을 들썩였던 사건들이 있다. 체육계 성폭력 사건, 버닝썬 사건, 정부가 민간인을 사찰하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사건 등등이다. 특히 체육계 성폭력 문제는 10여 년 전부터 문제 제기를 해왔던, 일상 생활적이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실태였음이 드러났다.

얼핏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 사건들은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조직문화의 한 단면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예방 가능하고 척결 가능한 ‘이런 유형의 사건들이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자문과 함께 한 정치철학자의 보고서가 떠오른다.

한나 아렌트(독일계 유대인 정치철학자)는 미국 유명잡지 ‘뉴요커’로부터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취재를 의뢰받는다. 그리고 1961년 4월부터 8월까지 진행된 공개재판 과정을 지켜본다.

3년 동안 60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간 전범 아이히만, 사람들은 악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하지만 법정에 나타난 사람은 초라한 중년의 보통 남성이었다. 그리고 그의 평범하고 진부한 변명들이 이어졌다. ‘나는 독일제국의 선량한 시민으로서 국가에 대한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했을 뿐이다, 나는 상부의 지시대로 그 명령을 따랐다. 나는 유대인을 죽이지 않았다. 나는 무죄다.’

아렌트는 이 재판의 보고서를 쓴다. ‘악은 대단한 동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평범하고 진부한 것이다. 그 평범한 악은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태도에서 온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과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세계 최대의 악은 매우 평범한 인간이 행한 악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동기도, 신념도, 악마적인 것도 없다.’ 이를 한마디로 ‘악의 평범성’이라 정의한다. 그리고 아렌트는 ‘아이히만은 매우 근면한 인간이다.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린다.

또한 아렌트는 그토록 많은 유대인을 강제 수용소로 이송할 수 있었던 것은 유대인 평의회 리더들의 존재와 협력 때문이라는 것도 크게 공표했다. 1965년 이 보고서가 책(‘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으로 출간되자 아렌트는 대내외적으로 비판과 인신공격에 노출되기도 한다.

50여 년 전 한 철학자의 깊은 성찰과 용기 있는 지적은 시공을 초월하여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다시 묻고 있다. ‘나치 독일의 대량학살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우리사회가 인권중시와 부정·비리 척결을 외치면서도 왜 이와 같은 사건들이 반복되고 있는가?

조직의 명령에 따라 성실히 수행한 일이 600만 명 살상이라는 잔학한 결과를 초래했듯, 지금의 우리가 생각 없이 행한 언행은 평범함을 가장하고, 또 다른 잔학한 결과를 불러올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우리사회의 인권·권력형 비리사건들이 어디, 힘과 권력을 가진 자들만의 문제인가? 그들이 부당한 행동과 지시를 해도, 내가 신념을 가지고 저지하고, 따르지 않는다면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옳지 않은 일에는 가담하지 말아야 함이 상식이 듯,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타인이 처한 부당한 상황을 외면도, 묵인도, 침묵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가 행동하지 않으면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내가 불신하고,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조직문화와 풍토를 만들고 있는 것은 이러한 우리들의 방관자적 태도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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