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신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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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희 수필가

신호등 앞에서 멈추었다. 빨간불이 들어온 건널목에서 파란불이 켜지길 기다린다. 잠시 분주한 마음을 접고 신호등 불빛에만 시선을 둔다. 신호등은 빨간불 멈춰요. 노란불 기다려 준비해요. 파란불 좌우를 살피고 건너가요.” 하면서 번갈아 삼색 등을 밝히고 있다.

운전을 배운지도 삼십여 년이 지났다. 운전하다 보면 아찔한 순간을 본다. 자동차가 달려오는 모습에서 운전자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 자동차는 운전자의 성품대로 달린다. 도로에서 덤프트럭이나 과속 추월하는 차를 보면 걱정이 앞서 먼저 지나가도록 비켜준다. 바쁜 용무가 있는 듯해서 먼저 보내고 나면 마음이 편하다.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에서 지정 속도를 유지하면서 신호등을 주시한다. 함께 달리면서 무엇보다 안전거리가 중요하다.

내 삶의 신호등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부모, 가족, 스승, 선배, 친구. 신호등처럼 인도해준 소중한 나의 인연이다. 부모님은 내 마음 중심에 있는 삼색 신호등이다. 일상을 세심하게 살펴보면서 삼색 신호등을 적절하게 밝혀주신다. 이젠 연로하셔서 빨간불이나 파란불은 멈추어버린 듯 노란불만 깜빡거린다.

내 고향의 신호등은 동네 어른들이었다. 자동차가 귀해 걸어 다닌 등굣길에서 만날 때마다 따뜻한 시선으로 격려해주셨다. 이젠 집집마다 자가용이 들어오니 거리에서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드물다. 예전에는 인적이 드문 길을 걷다가 사람을 만나면 초면일지라도 그냥 반가워 인사를 나누었다. 요즘은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면 움찔하며 경계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소박한 생활 속에 인정이 넘치던 고향마을이 그립다.

돌아가신 시부모님도 생전 모습 그대로 내 곁에서 삼색 신호등을 밝혀주고 계신 듯하다. “빨간불이니 잠시 멈추고 기다려라. 파란불이 곧 켜질 테니교통의 흐름을 주시하라고 한다. 사는 동안 간간이 빨간불이나 노란불이 켜질 때도 있었지만, 내 앞을 환히 밝혀준 파란불 덕분에 울퉁불퉁한 길도 무사히 지나올 수 있어 감사하다.

부모님처럼 나도 자녀에게 삼색 신호등이 된다. 먼 곳에 사는 아들과 딸에게 언제나 초록 불빛을 보낸다.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상황인지 속마음을 읽고 살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자녀를 향한 아낌없는 사랑과 기도이다. 남편은 빨간불, 나는 주로 노란불이나 파란불을 켜놓는다. 걸음마다 좋은 인연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랄 뿐이다.

내 안에 켜지는 삼색 신호등을 명상하며 지혜를 얻는다. 삼색 신호등은 신의 눈동자이다. 모든 빛깔의 바탕이 되는 삼원색인 빨강, 파랑, 노랑이 만드는 다양한 빛깔의 세상. 그 중에서 고운 빛깔을 마음에 담는다. 밀려오는 파도의 높이에 따라 멈춤과 기다림, 달리기를 예고해주는 불빛을 감지한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어진 길을 묵묵히 가라고 다독여준다. 지구상에 머무는 동안 소명을 다하고 귀천하라고 한다. 사랑의 불빛이 내 앞길을 밝혀주기에 두렵지 않다.

인생을 아름답게 살려면 무엇보다 따뜻한 눈길과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아닐까. 각박해서인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도 삭막해져 가는 것만 같아 아쉽다. 태양을 바라보며 따뜻한 기운을 마음에 담는다. 마음을 활짝 열고 다가오는 인연을 맞을 준비를 한다. 새로운 인연이 찾아오는 길엔 파란불이 환하게 켜졌으면 좋겠다. 좋은 인연을 기다리며 아름다운 동행을 꿈꾼다. 봄꽃들도 피어나 반기리라.

내가 사는 동네에도 큰 도로가 생기고 새 건물이 들어서니 한산하던 길이 분주하다.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에서 자동차 충돌 사고가 종종 발생하는 광경을 보았다. 어느 날 신호등이 설치되어 안심된다. 동네마다 신호등처럼 교통정리를 하면서 어둠을 몰아내는 어른이 계시기에 그나마 살만하다. 신호등처럼 인도하는 어른을 뵈면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자가용을 운전하며 도로를 달린다. 음악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리듬을 들으며 자동차와 나는 하나가 된다. 신호등도 분주하다. 신호등은 길 위의 표정을 훤히 읽어낸다. 달려가는 자동차의 모양이나 느낌도 다양하다. 대부분 남을 배려하면서 안전 운전하는 착한 사람들이다. 과속 질주하는 차는 위험하니 경계한다. 길은 살얼음판 같으니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조심조심 가야 하리. 자세를 낮추고 주위를 살피면서 차량흐름에 따라가야 하리.

세찬 바람이 불어오자 신호등이 출렁인다. 신호등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장승처럼 중심을 잃지 않는다. 묵묵히 헌신하는 신호등은 내공을 쌓은 수행자처럼 보인다. 거리가 자동차로 북적대도 삼색 신호등이 있어 안전하게 흐른다. 삼색 신호등은 하늘이 내려주신 사랑의 눈빛이다. 한동안 파란불인 길을 달렸다. 노란불에 지나갈 수도 있지만 잠시 멈춘다.

다시 신호등 앞에서 파란불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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