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아이 제물로 바쳐 성 쌓자, 애절한 울음소리 들렸다
(18)아이 제물로 바쳐 성 쌓자, 애절한 울음소리 들렸다
  • 김정은 기자
  • 승인 2019.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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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읍 수산1리 수산진성 동측-북측 성벽 만나는 곳에 있는 원형 당
잣밤나무 신목으로 삼아 마련돼…자녀 출세·사업 성공 등 빌러 찾아
수산진성이 자꾸 무너지자 관청에서는 어린 아기를 제물로 바쳐 성을 무사히 쌓을 수 있었다. 이후 이 아이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성벽에 할망당을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진안할망당이다. 진안할망당은 관에서 쌓았다고 해서 관청신당으로 분류된다.
수산진성이 자꾸 무너지자 관청에서는 어린 아기를 제물로 바쳐 성을 무사히 쌓을 수 있었다. 이후 이 아이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성벽에 할망당을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진안할망당이다. 진안할망당은 관에서 쌓았다고 해서 관청신당으로 분류된다.

과거 제주인들 생활 속 깊숙이 자리 잡았던 신당(神堂)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더군다나 제주지역 신당 중 민속자료로 지정된 곳은 송당본향당, 새미하로산당, 와흘본향당, 수산본향당, 월평다리굿당 등 5곳 밖에 되지 않으면서 재단이 갖춰지지 않은 곳들은 일반인이 얼핏 봐서는 신당인지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파괴되고 있다.

당 오백, 절 오백이라고 불리는 제주였지만 이제는 그만큼 신당을 찾아보기도 힘들어졌다.

그러나 신당은 과거 마을 주민들이 믿어왔던 신앙이자 공동체를 하나로 결집 시켰던 곳이기 때문에 주민들은 마을 신당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제주 신화를 연구하고 있는 한진오 극작가는 제주 곳곳에 신당 문화가 서려있다같은 듯해도 신당마다 특징이 있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허물어지는 수산진성’, ‘진안할망당으로 지켜내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1리 소재한 수산초등학교 입구에 들어서면 수산진성(水山鎭城)’이 자리잡고 있다.

수산진성은 다른 진성들이 왜구로부터의 방어를 위해 해안가에 지어진 것과는 달리 중산간에 위치하고 있어 독특하다.

이원진의 탐라지에는 수산진성은 세종 21(서기 1439)에 축성되었으며, 성의 둘레는 1164척이고 높이는 16척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수산진성의 동측 성벽과 북측 성벽이 만나는 지점에 진안할망당이 있다.

밭담 등으로 둘러쌓여 있어 외부인은 쉽게 찾을 수 없다.

6.1m, 담 높이 2m 크기의 원형의 당으로, 관청신당으로 분류된다.

성벽을 의지해 당을 마련했고 잣밤나무를 신목으로 삼아 그 아래 나지막하게 돌을 깔고, 시멘트로 마감한 제단을 두었다. 당 뒤쪽으로는 올레길이 나 있다.

수산진성을 쌓을 당시의 슬픈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옛날 수산리에 진성을 쌓게 됐다. 성을 쌓기 위해 관에서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공출을 받았는데, 한 부인이 공출을 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마침 공출을 받으러 온 관리에게 부인은 집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아기라도 가져가겠느냐고 한다.

관리는 할 수 없이 빈손으로 돌아오게 됐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 성을 쌓기만 하면 자꾸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다.

하루는 근처를 지나던 스님이 원숭이띠 아기를 바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관리는 아기를 바치겠다던 부인이 생각났고, 부인의 집으로 가 물어보니 그 아기가 원숭이띠였다.

그래서 그 아기를 땅에 묻고 성을 쌓았다. 그랬더니 성이 무너지지 않았고 무사히 완성할 수 있었다.

성이 완성됐지만 언제부터인지 그 성에서 자꾸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을의 한 부인이 음식을 차려 성담 아래에 가져다 놓으니 울음소리가 그쳤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곳에 당을 세우고 모시게 됐다. 그곳이 바로 진안할망당이다.

이후로 진안할망당은 수산리 마을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 됐고, 당의 제일(祭日)은 쥐날(子日)이나 토끼날(卯日) 생기를 맞춰 다니며, 밤에는 자시(子時)에만 가는 것이 특징이다.

이 당은 자녀의 진학, 출세와 사업의 성공을 위해 많이 찾으며 인근 부락인 고성리, 오조리 뿐 아니라 서귀포시와 제주시에서도 찾고 있다.

제단 밑에는 진안할망당의 유품들(열쇠, 사기그릇, 도자기, 함 향로) 등이 묻혀 있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 당에 남자들만 다니며 혼자서 밥차롱에 메와 고기, 술 등 제물을 차리고 와서 절을 하고 제를 지내고 가곤 했다. 최근에는 남녀 구별 없이 입시, 자격시험, 선거를 앞둔 사람들이 찾는다.

 

수산초등학교에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에 수산진성이 있다. 수산진성은 1439년 둘레 약 350m, 높이 약 5m 규모로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 쌓았다. 해안에 쌓았던 것과 달리 중산간에 쌓아 독특하다.
수산초등학교에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에 수산진성이 있다. 수산진성은 1439년 둘레 약 350m, 높이 약 5m 규모로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 쌓았다. 해안에 쌓았던 것과 달리 중산간에 쌓아 독특하다.

돌로 쌓은 천혜의 요새 수산진성

진안할망당을 들어서기 전 수산진성을 먼저 살펴보면 더욱 좋다.

수산진성은 이성은 안무사 한승순의 건의로, 1439(세종 21)에 둘레 약 350m, 높이 약 5m 규모로 도내 9개 진성 중 가장 먼저 축성됐다.

이경록(李慶祿) 목사가 임진왜란 때 성산 일출봉을 천혜의 요새라 판단하고 진성을 성산일출봉 인근으로 옮기면서 폐성됐다가(1597) 1599(선조 32) 성윤문 목사가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놓았다.

수산진성은 동서 134m, 남북 138m가 넘는다.

진안할망당의 설화는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 섬 주위에 돌성을 쌓아야 했던 제주도 사람들의 애환이라고 할 수 있다.

북쪽 성벽 전 구간에 남은 높이 45의 여장과 남쪽 성벽 앞의 자연 해자, 그리고 치성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수산진성은 제주도 기념물 제62호로 지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