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꼭대기의 사람
산 꼭대기의 사람
  • 제주신보
  • 승인 2019.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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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화 수필가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 남보다 많이 가지고 누리는게 행복일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남의 밥그릇을 크게 보며 욕심을 부린다. 허나 남보다 빠르게 정상을 정복하면 기력도 급히 소진될 수 있다. 내려오는 길이 예상보다 험해 주저 앉아버리고 싶기도 할터.

지난 가을 중국 황산을 여행할 때의 일이다. 산을 오르기 위해 버스보다 몇 배는 큰 케이블 카를 타야 했는데, 내부로 들어서자 정원초과라는 문구가 뜬다. 정면을 바라보니 정원은 100. 하지만 정상 체중이 넘는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탑승했으니 그럴 수 밖에. 케이블 카는 88명을 태우고 출발했다. 아래를 바라보면 고소공포증에 주저 앉을 것만 같았던 나는, 위쪽만 바라보며 겨우 정상에 도착했다. 산 정상에서는 온천 지역이 다 내려다 보였는데, 수증기에 둘러쌓인 아랫마을은 한결 신비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한없이 따스한 느낌을 주어 온 몸의 피곤이 풀리는 듯 하였고, 반나절이라도 머물고 싶어졌다. 하지만 여행의 각본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 일정이라 어쩔 수 없다. 잠깐의 호사를 뒤로 하고 하산을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산은 내려가는게 훨씬 힘이 든다는데 대비책이라고는 달랑 천 원 짜리 지팡이 하나였다. 가파른 내리막에서 우리는 서로 섣불리 의지할 수도 없어 조심덜 헙써!”하고 큰 소리로 서로의 안전을 빌어줄 뿐이었다. 로프줄에 의지해 겨우 산중턱에 내려오니, 다리가 많이 약해졌지만 아직 산을 내려올 수 있는 것만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행사 직원은 다른 모노레일로 안내했고, 우리 일행은 또 다른 산봉우리로 향했다. 그 산정상에는 큰 관광 식당이 있었는데, 높은 지대에 멋진 건물을 지은 것이 신기했다. 세계 각국의 관광객 또한 많아 상황을 보니 식사를 하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식당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작은 키의 왜소한 남자들이 긴 대나무 막대를 어깨에 지고, 막대 양쪽에는 자기 몸무게 보다 몇배는 무거울 것 같은 짐을 지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그 큰 짐이 출렁출렁 흔들리는데, 중심을 잃지 않고 리듬에 맞춰 그 무거운 짐을 옮기는 모습은 과히 기예에 가까워 보였다.

"이 식당에 식료품을 배달하는 사람들이에요. 어깨에 맨 대나무가 가늘고 약할 것 같지만 무겁고 딱딱한 나무보다 훨씬 낫대요. 반동을 이용해서 움직이고 짐을 옮기기 때문에 힘이 덜 든다고 해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하지만, 한쪽에는 40kg의 쌀을 다른 한쪽에는 또 그만큼의 식료품을 매고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 일행이 그들에게 손짓 발짓 하며 같이 밥을 먹자, 밥을 사주겠다표현했지만 산정상의 짐꾼들은 해맑을 웃음과 함께 거절의 손사래를 친다.

산 아래 경치를 구경하며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오니, 이번에는 21조로 나무 지게를 매고 사람을 태워 산 밑으로 나르는 짐꾼들이 다가왔다. “3만원! 3만원!” 서투른 한국말로 3만원을 외치며 어찌나 날렵하게 뛰어 다니는지, 여기가 정상인지, 산 아래 평지인지 헷갈릴 정도. 서로 경쟁적으로 손님을 유치하는 지게 짐꾼들은 손님이 생기는 순간 정말 환하게 웃으며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돈이 행복의 기준이라면 산 정상의 짐꾼들은 행복의 문턱을 넘지 못한 이들일 수 있다. 그들의 인생 또한 어깨의 피멍만큼이나 어둡게만 보일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벼랑 끝이 아니라, 산을 오르는 희망을 보았다. 위험천만한 산길만큼 이나 험난한 인생길에서 가벼운 나무 하나로 무게 중심을 잡고 정신력으로 버티며, 타국의 이방인에게도 해사한 웃음을 보일 줄 아는 사람들. 그들을 만나고 나니, 빈 몸으로 지팡이까지 의지해 겨우 산을 내려오는 나 자신이 미안해졌다.

황산을 오르고 난 뒤 나는 무서운 꿈에서 깨어난 듯 활기를 찾았다. 가파른 길을 오르내리며 무거운 짐을 나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빈 몸으로 오가는 내가 하찮은 것에 겁먹어서 되겠나. 호강에 겨워 삶에 대한 무서움을 느낀 것일 수도 있겠다. 성한 몸으로 눈을 뜨고 저녁이면 편히 잘 수 있는 집이 있는 것, 마당을 가꾸고 가족을 돌보는 평범한 삶이 행복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높고 신비로운 황산의 정상을 밟은 성취감보다 불평 없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엿본 감흥이 더 크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