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정(母情)은 같다
모정(母情)은 같다
  • 제주신보
  • 승인 2019.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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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아프리카 대륙엔 사막만 있지 않다. 생명을 품을 만큼 살아 있는 땅이다. 너른 들이 있고 강도 흐른다. 대평원 세렝게티에 봄이 오면 동물들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초식동물들이 광활한 평원 복판을 질러 흐르는 강을 건넌다. 새 초원을 찾아 나서는 길이다. 그것은 단순한 공간이동이 아니다. 새로 돋아난 싱그러운 풀밭을 향한 희망의 움직임이다. 아프리카에 급물살 넘치는 저런 강이 있다니 놀랍다. 격류로 흘러 이쪽과 저쪽을 갈라놓은 무슨 전설의 강, 운명의 경계 같다.

수만 마리다. 누와 얼룩말들이 무리 지어 가파른 강둑에 새카맣게 몰렸다. 전후좌우를 엿보다 몸을 날려 강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아무 때나, 덤벼들어선 안된다. 때를 놓칠세라, 물속엔 두 눈 부릅뜨고 악어 떼가 아가리를 떡 벌려 기다리고 있다.

한쪽이 위기에 처하면 다른 한쪽은 기회가 된다. 초식동물이 포식자에게 먹히는 건 한순간이다. 풀 뜯는 양순한 짐승들이 사나운 맹수들에 먹히는 건 정글을 지배하는 철칙이다. 약한 그들도 풀을 뜯는다.

드라마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대사 없이 순간순간 자연이 연출하는 진행이고 전개라, 극적이다

개코원숭이 무리가 강을 건너고 있다. 그들은 방식이 색다르다. 헤엄 대신 허공으로 몸을 날리는 탁월한 재주를 선택한다. 나뭇가지를 타고 뛰어넘는 공중묘기가 현란하다. 목숨 건 곡예다. 수놈이 시범을 보이듯 번쩍 몸을 날려 다른 나뭇가지를 붙잡아 번개처럼 몸을 던지고, 같은 동작이 두세 번 되풀이된다.

암놈은 새끼를 안고 넘어야 한다. 새끼는 어느새 어미 배에 거멀처럼 붙었다. 어린 것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올까. 필사적이다. 새끼를 끌어안은 어미가 나뭇가지를 타며 몸을 날린다. 순간, 어미 배에 달라붙었던 새끼가 떨어져 나갔다. 아찔한 순간, 눈앞의 넝쿨을 잡아 타오르고 있다. 잔뜩 긴장했던 어미가 새끼를 깊이 품고 강을 건넌다. 가슴 쓸어내리는 개코원숭이 가족.

놀라움은 또 이어진다. 어미가 죽을 고비를 넘긴 새끼를 깊이 품자, 곁에 있던 수놈이 암놈에게 단숨에 다가가 얼굴을 싸안더니 이마에 입맞춤을 한다. 서너 번씩이나. 동물이 제 짝에게 입을 맞추는 건 처음 봤다. 사람과 다르지 않다. 개코원숭이 가족은 그렇게 죽음의 강을 건너 꿈꾸던 초원에 몸을 부렸다. 간절함이 새끼를 지켜냈다.

새끼얼룩말이 강을 건너다 늪에 빠져 어미를 놓친다. 사력을 다해 기어 나온 새끼가 들판을 헤매며 어미를 찾고 있다. 쌔쌔쌔 허공을 찢는 소리로 운다. 어미는 무리와 같이 흐르면서도 새끼를 찾으며 쿠쿠쿠 순간순간 애끊는 소리를 낸다. 며칠이 지나고 어미와 새끼가 극적으로 만난다. 새끼 갈기 위로 긴 목을 얹어 비벼대는 어미얼룩말. 다시는 떨어지지 말자는 다짐일까. 붉게 타는 눈빛이 그들의 언어다.

어쩌다 새끼기린이 죽어 널브러졌다. 어미가 우뚝 선 채로 굽어보며 눈만 멀뚱거린다. 자리를 떴다 다시 온 어미. 하이에나와 들개 떼가 득달처럼 달라붙어 제 새끼를 뜯어먹고 있지 않은가. 다급히 달려들자 한순간에 흩어진다. 벌겋게 물든 새끼의 주검에 눈을 맞춘 채 꼼짝 않고 서 있는 어미기린. 새끼와의 이별을 겪고 있는 어미의 젖은 두 눈, 슬픔을 힘겹게 견뎌내는 모습이다.

완미(完美)한 사랑, 가슴에 사무치고 뼛속까지 스미는 그것, 모정(母情)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