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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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늙는다는 것은 낙엽처럼 시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들어가는 낙엽이 존재 가치나 매력이 없는 건 아니다. 그것들대로 제 멋과 가치를 지닌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시든 낙엽처럼 늙어도 저마다 삶의 품격이나 매력을 품고 산다. 오히려 깊은 멋을 풍기기도 한다. 삶의 즐거움이나 보람에 따라 멋의 농도는 달라지겠지만, 빈티지(vintage)의 관점으로 보면 세월도 나이도 모두 멋의 연륜이다. 오래될수록 숙성되는 와인처럼 지긋하게 나이 드는 건 멋진 일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 육체도 마음도 함께 늙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 생각을 그대로 믿고 체념하다 보면 순식간에 몸도 마음도 정말 늙어 버린다. 남자나 여자나 생각을 젊게 하고 외모도 멋스럽게 가꾸며 사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늘 젊게 살아간다. 멋이란 내면까지 젊음으로 각색하는 마음의 묘약 같은 것이다.

“청춘은 인생의 어느 특정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한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사람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만으로는 늙지 않는다. 마음에 젊음과 호기심이 잦아들 때 사람은 비로소 늙고 쇠약해진다. ‘나잇값’이나 ‘체면’ 같은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쓰고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보면 늙음은 예상 외로 빨리 덮친다.

“중년 이후 당신은 자유인으로서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 되고, 그때부터 신나는 인생이 시작된다.”고 ‘중년수업(2012)’은 전한다. 중년 이후야말로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저마다 제 삶의 주인공이 되는, 삶의 만족을 스스로 구가할 수 있는 시기다. 뭘 하든 제 마음대로며 그건 나이 든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하다. 삶의 만족이란 원하는 것과 현실이 맞아떨어질 때 생겨나는 기분이다. 만족을 느끼며 산다는 것은 즐거움이며 행복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이 만족하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인생 끝물에 ‘내 인생도 나름 좋았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다. 인생 전반의 성적에 연연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화려한 전반 경력이 착지를 불안하게 할 수도 있다. 전반 성적이 초라했다면 후반을 성공으로 이끄는 교훈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나이는 우리에게 생물학적 늙음만 주는 것은 아니다. 그 나이가 되어야만 비로소 어울리는 멋과 품격도 함께 준다. 전문가들은 막연한 불안감 따위는 훌훌 털어내고 중년 이후가 되면 선물을 받듯이 나이를 받아들이라 한다.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부담은 생각과 행동을 조금만 바꾸어도 크게 줄일 수 있다며.

한편으로는 고독을 즐기며 사는 방식도 스스로 선택하며 익숙해져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홀로 남게 된다. 주위 친구들도 하나둘 떠나고, 자식들도 독립하여 떠난다. 부부마저도 어느 순간 한쪽은 돌아오지 못할 길로 먼저 가버린다. 그게 인생이며 늙음이다. 인생 후반에는 고독에 대한 내성(耐性)이 필요함이다. 혼자 식사도 해야 하고, 여행도 하고, 남편은 아내대신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방청소도 하고. 이런 자기 건사의 삶은 인생 마지막으로 주어지는 선물 같은 기회일 수도 있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마무리해 갈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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