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서스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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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진, 前 문예재단 사무처장

싱그런 오월 초입, 건조한 일상을 뒤로 하고 삶의 동력을 찾아 낯선 땅을 밟았다. 생애 처음 중년의 아들과 부자간 동행길이었다.

코카서스 3국은 흑해와 카스피해를 사이에 두고 러시아, 터키, 시리아, 이란과 남북 국경을 맞대고 있다. 영어로 ‘트랜스 코카서스(Trans Caucasus)’로 불리는데, 이곳을 통하지 않고는 코카서스를 넘을 수 없다는 의미를 뜻한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고리임을 알 수 있다. 고대 왕조시대부터 이슬람과 기독교세력의 충돌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아픈 역사의 현장으로 한반도와 그 유사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에 의해 자행된 150만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의 참극은 뼈아픈 시련의 역사를 입증한다. 3국의 전체 면적은 한반도 크기로 인구는 1700만명 정도다. 이 3국을 동서로 에워싸 무려 1800㎞에 이르는 두 갈래 긴 산계를 이룬 장벽이 코카서스 산맥이다.

여행 사흘째, 칸사라이 여름궁전에서 본 프레스코 벽화는 시사하는 바가 컸다.

힘센 사자가 잉어를 밟고 있는 형상은 권력자가 약한 백성을 억압하고 있지만 권력은 쉽게 무너져 내림을, 여자와 다투는 모습에서 기밀 누설로 위난을 초래할 수 있음을 암시해준다. 어떤 왕조도 평화로 다스리고 힘을 키우지 못하면 결국 존속할 수 없음을 옛 사람들도 경계한 것이다.

국경 통과 후 꼬박 4시간을 달려 찾아간 세반 호수. 해발 1900m에 있는 거제도 크기의 산정호수다. 호숫가에 세워진 고색창연한 옛 교회는 인간의 기원을 모두 빨아들일 것만 같은 경건함을 품고 있다. 첫 놀라움은 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표류한 곳이라 전하는 아라랏트(해발 5137m)산의 절경이다. 막힌 데 없이 탁 트인 대 평원 위로 우뚝 솟아 신령스러운 위용 앞에서 경탄을 금치 못했다.

13세기 초반에 세워진 ‘게그하르드’ 수도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른바 동굴 교회다. 망치와 끌만 가지고 거대한 암벽산을 뚫어내 거대한 기둥을 살리고 2층으로 통하는 건물형태로 세워졌다. 인간의 힘이 미칠 수 없다고 생각한 그곳에 신의 영광을 심으려 했던 신앙의 숭고함이 작용했으리라.

이번 여행의 백미는 웅장한 북코카서스산맥이 자랑하는 설산의 풍미를 눈에 담는 것이다. 카즈베기 전망대에서 바라본 거대한 5000m급 준봉들, 그리고 그 산줄기 위로 석양과 바람, 눈과 구름이 조화를 이뤄 마치 용이 꿈틀대는 듯 시시각각 파노라마의 풍경을 연출해냈다.

수도 트리빌리 시내를 굽어보는 높은 언덕에 세워진 ‘조지아 마더 상’이 무척이나 이채롭다. 왼손은 와인 잔을 받쳐 들고, 오른손은 칼을 굳세게 잡고 있다. 친구는 감미로운 술로 환대하고, 적은 힘으로 대적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동상이었다. 평화는 바로 이 중립적 의미 안에서만 건재할 수 있음을 각인시켜준다.

여기서 우리 국내 상황을 돌아보게 한다. 북핵 문제와 중국의 안보위협 앞에 우려되는 한미동맹체제, 험난한 한일관계 등 어느 것 하나 매듭을 풀기 어려운 과제들이 놓여 있다. 옛 신라 김춘추, 고려 때 서희 같은 위대한 외교가들을 떠올리게 하는 작금이다. 하루 빨리 국익을 고려한 외교력 복원을 통해 국가 위난을 타개해야 할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한 형제다’라는 이 나라의 속언처럼, 삶이 주는 일희일비에 휩쓸리지 말고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살아가는 데 뭔가 울림을 주는 일에 목숨을 걸 수 있다면 그게 인간으로 태어난 값진 사명이 아닌가 싶다.

열이틀간의 여정을 통해 개인적으로는 부자간의 정을 두텁게 쌓아 진면목을 담아낼 수 있었던 화목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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