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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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진 동화작가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냇가 주변은 신록으로 싱그러웠고 숲속에선 이름 모를 새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햇살이 번져 나가는 이른 아침으로 기억되는 그 날 어디론가 하염없이 가고 있었던 아버지. 그 뒤를 예닐곱 살배기 아들이 졸졸 따랐지만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다. 60년 전 기억이지만 아직도 희미하게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아있는 그날 아버지는 어디로 가려고 했을까? 아버지만이 알고 있을 그 오래된 가출의 기억. 그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내 삶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은 슬픈 가족사의 단면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부재不在하니 애증愛憎도 남아 있을 리 없지만 오늘따라 아버지가 생각나는 건 어인일일까?

지난 오월 어느 날 한국시낭송제주연합회 K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낭송회 초대장을 보낼 테니 축사를 부탁한다는 전화였다. 시낭송가들이 하는 의례적인 행사 정도로만 알고 기대 하지 않고 갔는데 그날 있었던 시낭송 스토리 극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좋은 공연이었다.

노인이 공부하는 딸을 위해 학교에 쌀 한말을 지고 간다. 딸은 초라한 아버지가 부끄러워 다시 오지 말라고 성화를 부린다. 훗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무게를 새삼 절감하고는 통곡하는 자식들. 1아버지 학교에 오셨네부터 제7아버지 사랑합니다까지 아버지를 소재로 한 시들이 낭송과 스토리로 재연되었다.

이 시대 아버지들이 설 수 있는 곳은 정녕 어디인가? 점점 위축되면서 존재가 없는 우리네 아버지를 조명하고 스토리 극으로 되살려내 준데 대한 감동이 한 달 여가 지난 지금도 여운으로 남아있다. 모든 것이 끝나고 폐막 선언을 할 즈음 관객 중에서 머리가 허연 노인이 K회장에게 걸어오면서 폐막을 만류挽留한다. 한 말씀하게 해 달라는 하소연이었다. 아버지 역을 한 배우를 부르고 자식 입장에서 아버지 역을 한 배우에게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절규한다. 감동이었다. 아들이 입장에서 그 시절 아버지라 한 번 불러 보지도 못한 불효를 공개 석상에서 참회하는 모습이라니. 그렇다. 예술은 이렇게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카타르시스(catharsis)를 경험해야 진정한 예술이다. 마음을 움직이고 관객들의 내면을 변화 시킬 때 예술은 그 빛을 발할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60년 전 나의 아버지는 어디로 가려 함이었을까? 나에게 어떤 애증도 주지 않은 아버지이지만 오늘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그날 눈물을 흘리며 절규한 노인처럼 나도 목 놓아 아버지를 부르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싶다. 내 어깨를 누르는 아버지라는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게 펑펑 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는 조롱당하거나 희화戱化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밤늦게 돌아오지 않는 자식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와 다르게 열 번 넘게 현관문을 쳐다보는 산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무게는 태산과 같아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 깊어가는 수릿날 저녁에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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