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마라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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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전애, 변호사/논설위원

필자는 얼마 전 무려 5년 만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건강검진 결과가 나올 즈음, 이메일로 결과를 보내준다더니 굳이 병원으로 찾아오라는 전화가 왔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죽을병인가? 난 아직 결혼도 못해봤는데! 세상에 아이 하나는 낳아 놓고 떠나야 하는 것 아닌가?

40 평생 공부랑 일밖에 안해봤는데!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울고 싶은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결과는 오버스럽게 걱정했던 것에 비해서는 양호한 편이었다. 담낭에는 꽤 큰 용종이 발견되어 담낭 자체를 제거하는 수술을 권유받았다. 그러니까 쓸개 빠진 인간이 되라는 거네. 초기 지방간에 허리에도 팽윤성 디스크. 게다가 5년 새 4㎏이나 몸무게가 늘어있었다.

이후 거의 한 달여를 금주하고, 그 좋아하는 고기를 줄이고 그 싫어하던 채소를 사다가 먹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소화가 잘되고 아침에 일어나는게 가뿐해졌다. 심지어 피부도 좋아지고 살도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군. 죽다 살아난다는 말이 바로 이런 거구나.

술과 고기를 줄이려니 저녁약속을 피할 수 밖에 없었고, 반대급부로 가용시간이 늘어났다. 이 기회에 우당도서관의 독서마라톤대회에 참가 신청을 했다.

우당도서관에서는 매년 ‘책읽는 제주’를 위한 전시민 독서운동으로 독서마라톤대회라는 독특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읽은 쪽수를 마라톤 달리기에 비유하여 완주를 독려한다.

필자는 지인들과 4명이 팀을 이뤄 3개월여 간 2만쪽을 읽는 ‘단체전 풀코스’에 출전했다.

독서마라톤대회를 출전하면서, 읽다가 바쁘다는 핑계로 손을 놓았던 책들, 사놓고 안 읽은 책들을 방구석에서 찾아내어 읽어 나가고 있다.

책들에게 사과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고기를 대신해서 책을 먹어버리는 마음으로 와구와구 마구마구 읽어 나가고 있다.

그러던 중 인상 깊었던 책 한 권이 있다. 천문학자 이명현 박사께서 쓴 ‘이명현의 별 헤는 밤’이라는 책이다. 재작년 가을 제주에서 이명현 박사를 초청해 진행했던 작은 살롱이 있었는데, 그때 저자께 직접 사인까지 받았던 책이다. 박사님과의 인증샷은 신경 써 찍어놓고 정작 책은 2년 동안 단 한 쪽도 안 읽었음을 수줍게 고백한다.

이 책은 에세이의 형식으로 별과 우주의 기원에 대해 그리고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는, 깊고 따뜻하게 도닥이는 책이다.

이명현 박사는, 지구가 막 태어났을 무렵 아마 지구에 끊임없이 충돌했을 것으로 보이는 얼음 알갱이 혜성들이 지구에 생명체가 번성하기 충분한 물을 공급했을 것이라 한다.

그리고 그 혜성에 포함되어 있던 유기화합물이 생명을 만들어 냈을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한 명의 인간이 하나의 별이고 하나의 우주라고 한다.

이래서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나보다. 필자가 제주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변호사라서, 밥을 먹어도 술을 마셔도 살인 사건, 돈 떼먹은 사건 이야기들만 하는데 이런 별의 별 이야기라니. 우리가 우주에서 온 존재라니.

독서마라톤대회 1등은 제주시장님께서 직접 상장을 수여하신다고 한다.

상에 민감한 한국인에게는 적절한 당근이다. 고희범 시장님, 곧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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