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의 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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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명상가

전혀 준비하지 못한 죽음에도 당황스러움은 잠시요, 이내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상상으로만 알고 있던 또 다른 세계에 당도한다. 극히 드물지만 전하고 싶은 사연이나 억울함은 잠시 지구에 머물기를 원한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답답한 상황이 끝나기를 학수고대한다.

지역 행사에 와달라는 부름에 약속을 했던 일이라 참석을 하게 되었는데 기대와 달리 모든 게 소홀해 일정이 늘어졌다. 이왕지사 긍정으로 해내자 해서 하루를 더 묵게 되었는데 몸이 너무 피곤해서인지 잠을 못 이루다가 새벽이 될 즈음에 왠지 모를 이끌림에 숙소에서 나와 한참을 걷게 되었다.

바람과 파도 소리가 전부인데 어디선가 속삭임이 들려왔다. 잘못 들었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려는 찰라, 건강한 남자가 보였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다가와 자신의 사연을 들어달란다.

도울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으면 그리하겠다 하고 연유를 물으니 살아 생전에 이곳에서 고기 잡는 어부로 열심히 살았으나 익숙한 장소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최후를 맞이했단다. 같이 있던 이들은 모든 걸 인정하고 떠났지만 자신만은 아직 이곳을 떠돌아다니면서 이런 순간을 기다렸단다. 반백 년 세월이 흘러 기억조차 잊었겠지만 이런 슬픈 이별은 싫단다. 그리고 지금 지내고 있는 제사도 지금 날짜가 아닌 이틀 후란다. 비록 떳떳하지 못한 가장이지만 겉치레보다는 정성을 담아 한번을 지내주길 원하고, 시신은 없지만 의지할 수 있는 가묘를 만들어 주면 거기에 보답한단다.

귀신이 무슨 세상 삶의 영향을 미칠까 하겠지만 이 또한 사실이다.

다음날 손님들이 찾아오셨는데 중년의 아주머니가 유독 눈에 띄었다. 순서가 되어 “자녀분이 정신적이 불안감이 있네요.” 하니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신다.

장성한 아들이 번듯한 대학을 나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언제부터인지 심한 우울증에 걸렸단다.

형편이 어려우시겠지만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간편한 절차로 고인의 원한을 풀어주자 하고 수목장으로 대신하고 무거웠던 걱정거리를 내릴 수 있었다.

얼마 후 합격 소식에 집안에 웃음이 다시 왔단다. 염치없는 부탁이라고 몇 번의 고마움을 표한 그에게도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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