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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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싱그럽다. 자극적인 햇살이 푸름을 더욱 짙게 한다. 좋은 날씨가 외출을 유혹해 팽나무 군락이 이어지는 길을 걸었다. 세월 이긴 크고 듬직한 나무가 풍상에 휜 채 동네를 온통 초록으로 지키는 양이 내 마음까지 든든하다. 하늘 가릴 만큼 우람한 저 자태면 도대체 수령이 얼마나 될까. 계절 매단 가지 끝, 저마다 얼기설기 잇고 얽히며 숱하게 엮인 모습들이 마치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망처럼 보인다. 밭과 밭이 이어지며 펼쳐진 길을 따라 걷는데 거리는 얼마 안 되지만 등성이 가팔라 그런지 몇 걸음에도 숨이 찼다.

주변은 돌무지로 큰 암반들 틈에 썩다 만 고목도 뒹굴고 있고, 덩굴식물도 높은 나무 끝을 붙잡고 생을 유지하고 있었다. 건드리기만 해도 부스스 소리로 생이 다했음을 알리는 소리 위로 몇 발자국 옮겼더니, 희한하게 생긴 나무가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저보다 조금 큰 나무를 의지 삼아 다른 나무가 온통 몸을 기댄 채, 처음부터 하나인 듯 하늘을 향해 건장함을 자랑하며 뻗고 있었다. 연리목처럼 나무를 빽빽이 심은 후 솎지 않아 가까이에서 엉킨 채 서 있는 것은 보았지만, 전혀 다른 종 두 개체가 서로 엉켜 거목으로 자라는 모습은 처음이다. 오랜 세월 맞닿아 뻗으며 자리를 내줘 처음부터 하나인 것처럼 공생하는 모습이다.

지난 3월 초던가. 제주 한 일간지에 ‘이혼율 전국1위…제주법원에 가사과 신설’이란 기사가 실려 있었다. ‘사랑은 눈을 멀게 하고, 결혼은 눈을 뜨게 한다.’는 말도 있지만, 살다 보면 이상과 현실의 온도 차가 극명함을 이곳에 사는 우리만 잘 몰라 1위라는 별 유쾌하지 않은 기사를 접하고 있는 것일까.

요즘 젊은 세대들은 결혼도 본인 필요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지 필수가 아니란 말들을 종종 한다고 들었다. 한 세대가 바뀌고 있을 뿐인데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절대적 힘으로 강요받던 우리 세대와는 확연히 다름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

결혼도 당사자가 행복하기 위한 삶의 한 방편이고, 수단이라며 본인이 알아서 취사선택하겠다는 데야 인생을 대신 살아 줄 것도 아니고, 그 부분에 할 말은 없다. 좋은 것에도 호불호가 있기 마련이니 신중해야 하는 것도 맞다. 가정 분쟁에 대하여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응을 위해 신설되는 부서라고 기사는 쓰고 있었다.

사랑의 구성요소와 다양한 형태를 이론적으로 설명한 미국의 심리학자인 로버트 스턴버그는 그의 ‘사랑의 삼각형이론’에서 사랑에 대하여 생각의 깊이를 갖게 한다. 사랑은 열정, 친밀성, 책임감 이 세 가지 요소가 적절하게 배분 되었을 때 지속성을 갖게 되며, 그것은 서로 부단한 노력을 해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까 본 종이 다른 두 나무처럼 전혀 다른 종끼리의 얽힘이지만 이미 관계된 상태라면 서로가 조금씩 내줄 것은 내주고, 모자란 것은 받으며 살아야 하리라.

스턴버그의 이론처럼 열정도 그렇고 책임감과 친밀성 또한 각자 부단한 자기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책임감이란 말의 무게처럼 쉽게 거저 가질 수 있는 것은 없다.

하다못해 바닥에 떨어진 동전 한 닢을 줍는 사소한 일에도 허리를 굽히는 수고로움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기 노력 없이 얻는 것엔 진정한 가치가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늘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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