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친근한 모습…민중들에게 삶의 희망 심어줬다
(19)친근한 모습…민중들에게 삶의 희망 심어줬다
  • 김정은 기자
  • 승인 2019.0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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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도평동 소재 사찰 흥룡사
4·3 이후 덕종스님에 의해 창건돼
용장굴 입구서 미륵불 3기 모셔
영험함으로 소문나 ‘신앙 대상’
흥룡사는 정확한 창건 연도는 알 수 없지만 400년 전 세워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에는 용장굴암으로 창건됐다가 1952년 덕종 스님에 의해 새롭게 창건됐다.
흥룡사는 정확한 창건 연도는 알 수 없지만 400년 전 세워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에는 용장굴암으로 창건됐다가 1952년 덕종 스님에 의해 새롭게 창건됐다.

불교는 삼국 시대를 전후해 제주지역에 전파됐다.

이후 고려 중기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불교문화가 꽃피워졌다.

특히 고려시대 불교는 국가 이념으로 민중들의 생활 의식과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제주불교 역시 고려시대 중앙정부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성장, 발전했다.

법화사와 수정사도 고려 시대는 물론 조선 초기까지 국가의 지원을 받았다.

또 제주는 100년 동안 원나라의 지배를 받았고, 불교도 이 특성을 이어받았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억불숭유 정책에 따라 불교는 쇠퇴기를 맞이했고, 제주불교 역시 억압받았다.

특히 1702년 이형상 목사가 제주로 왔던 13개월 동안 불교 탄압은 절정에 이룬다.

이처럼 정치적으로 제도권에서 밀려난 불교는 조선시대 수많은 탄압을 받았지만 사상적 측면보다 정신적 측면이 주를 이루며 민중들 삶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었고 민중들 생활 속에서 토착화됐다.

민가에 불상을 모신 인법당의 형태로 명맥을 유지하며 질긴 생명력을 보여줬던 것이다.

불교문화 가운데 가치 있는 유적을 소개한다.

 

흥룡사에 있는 미륵불 3기. 제주에는 미륵신앙이 유난히 많이 발견되는데, 흥룡사에 있는 미륵불은 영 험하다고 알려져 있다.
흥룡사에 있는 미륵불 3기. 제주에는 미륵신앙이 유난히 많이 발견되는데, 흥룡사에 있는 미륵불은 영험하다고 알려져 있다.

친근한 모습의 미륵불 3영험함 상징물

제주시 도평동 소재 흥룡사는 옛 지명으로 용장굴로 불리우는 곳에 창건된 사찰이다.

마을 안길을 따라 가다 보면 흥룡사 모습이 드러나는데 용의 생김새와 흡사하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옛 이야기를 통해 400년 전 천인들을 위해 세워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에는 용장굴암으로 창건됐지만 제주4·3 때 폐사됐다가 1952년 능허당 덕종스님에 의해 흥룡사(興龍寺)라는 사찰로 재창건됐다.

영험한 기도처로도 잘 알려진 흥룡사에는 미륵불 3기가 조성돼 있다. 미륵불에는 이와 관련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옛날 한 스님이 한라산 용을 발견해 그 용을 따라가 보니 이 곳 굴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용장굴이라 명명했다.

굴에 있는 돌로 미륵불을 조성해 수행했다고 전해진다.

후에 미륵불이 영험하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지자 당시 도평동 거주자였던 김치하씨의 조부와 이호동 문호근씨의 조부, 김재순씨의 증조부 김경보씨 등이 미륵불 2기를 더 조성해 3기를 용장굴 입구에 모시게 됐다고 전해진다.

세 미륵불 가운데 한 미륵불은 전달됐던 흔적이 남아있다.

당시 미륵불의 영험함이 소문나자 용장굴 인근 한 주민이 얼마나 신성하고, 기도를 잘 들어주는지 시험해 보겠다며 술을 먹고 미륵불을 반토막 냈다고 한다.

주민은 마을에 돌아가기도 전에 쓰러져 언어장애를 갖는 등 업보가 내려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제주지역 미륵신앙

미륵은 친구를 뜻하는 미트라(mitra)에서 파생된 마이트리야(Maitreya)를 한문으로 음역해 표기한 것이다.

미륵은 민초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구제해주는 존재인데 제주지역에는 유난히 미륵불이 많이 조성돼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육지에서는 불보살상들이 형성돼 신앙의 귀의처가 되고 있지만 제주에서는 미륵신앙이 유난히 많이 발견된다.

특히 조선시대 출륙금지령은 제주와 육지를 단절시키는 계기가 됐고, 이로 인해 제주만의 독특한 신앙과 문화를 더욱 보존하는 계기가 됐다. 흥룡사 미륵불은 육지의 불상들처럼 온화하고 자비로운 미소 없이 투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겉은 퉁명하지만 속은 따뜻한, 그러면서 사람을 그리워하며 정을 듬뿍 안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 제주인들이 친숙하게 이곳에서 기도를 드리며 삶의 희망을 품고 돌아가곤 했다.

흥룡사의 역사는?

제주불교문화대학에 따르면 흥룡사는 1933년 김연선 스님이 위봉사 제주도평교소로 설립인가를 받았다.

이후 19436월 조계종 백양사 포교소로 변경, 신고하게 된다.

당시 백인수 스님이 1940~1941년 백양사 김녕포교소에서 감원으로 활동하다 이곳 백양사 포교소사로 부임해왔다.

이후 19491월 제주4·3으로 백인수 스님이 총살되고 용장사는 폐허가 된다.

잿더미가 된 용장사 터를 다시 일으킨 것은 덕종스님으로 1952년 새롭게 창건됐다.

이 때 명칭을 흥룡사로 개명한 것.

이후 1972년 대웅전을 중건했지만 45세 나이로 열반에 들게 된다.

그후 복덕행(홍순녀·79) 보살이 불사를 계승했지만 1987년 다시 화재로 사찰이 전쇠됐다.

복덕행 보살은 부처님을 위해 초심을 새겨 2년 뒤인 1989년 지금의 대웅보전을 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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