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정원
삶의 정원
  • 제주신보
  • 승인 20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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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희 수필가

새벽에 비가 내렸는지 신선한 공기가 차갑지만 상쾌하다. 파란 하늘이 열리고 아침 햇살을 받아 선명하게 다가오는 한라산을 바라본다. 오늘의 날씨는 맑고 따뜻한 봄날일 것 같다.

지난겨울 창문을 교체하면서 미세먼지와 찬바람과 접착제냄새가 한동안 우리를 괴롭혔다. 두통과 감기가 오는 듯하더니, 베란다 화분의 흙이 오염되고 곰팡이가 생기면서 화초들도 몸살이 났다. 크로톤나무·뱅갈고무나무·부겐베리아·행복나무·관음죽·호야·스프라이트 벤자민 등 살짝 건드려도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군자란은 잎이 두꺼워 괜찮은 줄 알았는데 얼어서 누렇게 말라가는 부분은 잘라냈다. 주황색 꽃을 한 아름 안겨주던 기대는 접어야 할 것 같다, 크로톤도 잎이 오색찬란하여 여러 식물 중 눈에 확 들어오는 나무다. 자세히 살펴보니 줄기 끝에 조그만 연두 빛 새순을 품은 것 같아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사철 푸른 잎이 있어 공기를 정화 시켜주는 행복나무는 내 키만큼 자랐었다. 가지와 줄기도 위에서 50정도 과감하게 자르고 보니 막대기하나 세워놓은 것 같다. 뱅갈고무나무도 둥치만 남아 이런저런 생각 말고 버리느냐 아니면 정성으로 키워보느냐 고민하다 차마 버리지 못했다. 그동안 쌓아온 정 때문에. 환경의 변화가 주는 아픔을 톡톡히 맛보는 셈이다.

죽은 고래 뱃속에서 폐플라스틱이 다량으로 나왔다는 것과, 일회용 빨대에 코를 찔러 피를 흘리며 아파하는 거북이 사진을 보았다. 우리가 일상에서 간편하게 사용하고 버리는 일회용 비닐과 플라스틱제품이 주범이다. 담배필터의 주원료도 플라스틱이라고 하는데 꽁초를 하수구에 마구 버린다. 해양쓰레기의 3분의 1이 담배꽁초였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괜찮겠지하는 생각을 버리고 온 가족이 지혜를 모으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미세먼지가 나쁨 단계라고 하여 밖을 내다보니 뿌옇게 시야를 가린다. 마당에 빨래도 널 수 없고 주차된 자동차들도 먼지가 잔뜩 끼어 있다 어린이나 노약자는 외출을 자제해 주세요.’라고 일기예보나 문자로도 수시로 알려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별 반응 없이 미세먼지를 마시고 다닌다. 초미세먼지가 호흡기로 들어가면 폐가 나빠지고 피부 모공 속으로 들어가면 노화의 원인이 된다. 미세먼지 방지용 마스크를 사용하여도 그 역할이 시원치 않다. 인공강우로 물을 뿌려 먼지를 날려버리겠다고 하지만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피해는 결국 우리가 받아야하는 사회적 재난이다.

일월이 가고 이월이 왔다. 베란다 친구들은 죽은 듯 침묵으로 궁금증만 더해갔다. 물주는 때와 물의 양을 조절하며 살아나기 힘든 화분에는 영양제도 주었다. 환자를 간호하듯이 살피고 들여다보는 횟수가 늘어갔다. 삼월이 시작되자 기대하지 않았던 군자란이 잎 사이로 꽃봉오리를 쏘옥 내미는 게 아닌가! 다른 포기 잎 사이에도 꽃망울이 맺혔다. 얼었던 겨울을 참아내고 잎이 잘리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꽃을 피우려는 군자란이 기특하고 대견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큼직한 꽃대는 꽃망울 열두 개를 머리에 이고 올라와 주황색 꽃을 피우니 한 다발이 되었다. 다른 포기에도 동시에 꽃이 피어 베란다의 분위기는 이곳저곳에서 부활의 봄을 알려준다.

물오른 가지마다 새싹을 틔우며 결코 서두르지 않는 그들의 여유가 사랑스럽다. 부겐베리아는 줄기 사이로 아기 잎들이 나와 점점 풍성해지고 뱅갈고무나무도 줄기와 잎이 쑥쑥 올라와 손바닥처럼 넓적해진다. 막대기였던 행복나무 줄기와 잎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며 오일을 바른 것처럼 윤기가 흐른다. 크로톤나무 줄기에도 하트 모양의 잎이 촘촘하게 달고 나왔다. 호야는 두툼한 초록 잎에 검은 점박이가 생겨 병이 들었는지 보기에 좋지 않아 잘랐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자리엔 핑크빛 잎이 돋아나 예쁜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작년보다 꽃망울이 많아 귀하고 아름다운 별꽃을 볼 수 있겠다. 관음죽도 연두 빛 잎이 다섯 손가락을 편 것처럼 싱그럽게 자란다. 볼품없던 벤자민은 수많은 가지에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하얗고 푸른 잎이 무성해졌다.

죽음의 벼랑 끝까지 내몰렸던 삶의 정원에서 생명체가 다시 살아났다. 환경오염으로 생태계가 파괴되는 상처와 아픔을 참아내고 새롭게 거듭나는 식물들이 신비롭다. 작은 나무와 꽃을 가꾸며 키우는 것이 나의 소확행(小確幸)인데, 사월에 폭설이 내리고 오월에 폭염이 오는 기후의 변화가 우리를 두렵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