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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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경전하사·鯨戰蝦死)’는 속담이 있다. 강자들이 싸우는 통에 약자가 중간에 끼어 화를 입는다는 말이다. 비슷한 의미로 ‘맹자’에 나오는 간어제초(間於齊楚)가 쓰인다.

전국시대 7웅 중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있던 등나라는 두 나라의 틈바구니에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언젠가 맹자가 등나라에 머물게 되자 군주 문공이 그에게 물었다. “우리나라는 약소국으로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누구를 섬겨야 편안하겠습니까.”

맹자는 “백성을 지키려거든 성을 높이 쌓은 후 그 밑에는 연못을 깊게 파 백성과 더불어 죽기를 각오하고 지키십시오”라고 답했다. 두 나라 눈치 살피지 말고 자국 백성부터 먼저 살피라는 뜻이다.

▲최근 미·중 두 경제 대국의 싸움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노심초사하고 있다. 패권 경쟁에서 서로 자기편에 서라는 압박에 한국은 튀는 불똥을 다 맞고 있다.

중국 정부는 최근 삼성과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IT업체들을 불러 미국의 대중 압박에 협조하지 말라며 예방주사를 시도했다. 미국 쪽에 가담하면 “응징당할 것”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으름장을 놓았다.

미국도 주한 대사를 앞세워 화웨이와의 거래를 끊으라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게다가 “동맹국의 네트워크가 취약하다면 정보공유 문제를 다시 평가할 필요가 있다”며 경고를 하기도 했다.

이미 중국으로부터 ‘사드 악몽’을 경험한 우리 기업들은 미·중 양쪽의 눈치를 보며 선택의 순간에 내몰리고 있다. 반사 이익에 곁불을 쬐기는커녕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판이다.

▲누가 봐도 작금의 외교가 중요하다. 미·중 분쟁의 유탄을 피하는 데 모든 외교 자원을 집중해야 할 것 같은데 정작 우리 정부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기업 간 분쟁이 아니라 국가 간 분쟁이라 한국 기업이 일방적 희생양이 될지 모를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우리 기업 보호를 외면하며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라 하는 건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국익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정부 차원의 전략과 대응논리가 절실한 때이다.

우리 민족의 수난사엔 공통점이 있다. 바깥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모르고 내부에서 우리끼리 열심히 싸우다가 당했다.

우왕좌왕하다가는 동맹에도 버림받고 교역이웃에게 뭇매 맞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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