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여름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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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권일 농업인·수필가

초여름 더위가 심상치 않다.

게다가 올여름은 예년보다 폭염이 더하겠다는 날씨예보가, 마음을 묵직하게 누른다. 일상에서의 더위야 이러구러 견뎌내겠지만, 한증막 방불케 하는 비닐하우스 농사일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나이 드니, 세월 더욱 빠르다. 아내를 도와 전정과 적화, 김매기 하다 보니 어느새 6월이다. 요즘은, 어머니 젖가슴처럼 축 늘어진 나무들 기력을 살리는 일에 매달리느라 하루해가 짧다.

당도를 높이기 위한 단수(斷水)때문에, 타는 목마름에 시달렸던 나무들에, 듬뿍듬뿍 원 없이 물 주고, 구수한 냄새 피어오르는 부산물 퇴비들 풍성하게 뿌려준다. 각종 영양제로, 수차례 엽면시비(葉面施肥) 해주는 것은 보너스다.

모두가 고마운 나무들에 대한, 농심(農心)의 보은(報恩)이다.

덕분에, 갈맷빛으로 부활한 나무들마다에, 앙증맞은 열매들 올망졸망 달렸다.

이제, 자식 같은 감귤들을 병해충들로부터 지켜내는 일이 남았다. 창가병, 궤양병, 흑점병, 귤귤나방, 진딧물, 귤응애, 깍지벌레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호시탐탐 창궐하여, 잎사귀와 열매들을 노리기 때문이다.

항상 최전방 관측병의 시선으로 꼼꼼히 예찰해야 하며, 병해충이 담을 넘어 오기 전에 즉각 대응조치를 해야 한다. 해당 살균제와 살충제의 살포로, 완벽한 방제를 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때를 놓쳐 병해충에 노출되면, 감귤작황의 질과 양에서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농약은, 한 해에 열 번 내외를 살포한다. 그런데, 병해충이 많이 발생하는 여름에 집중되다 보니, 작업이 녹록치 않다. 온몸 감싸는 방제복에 마스크, 모자, 보안경까지 끼고 나면, 가만히 있어도 비지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하지만, 감귤에 의식주가 달린 농부가 어찌 더위를 피해갈 수 있겠는가.

작업 중 조금만 방심하면, 농약줄이 뒤엉키는 일도 다반사다. 농약액이 보안경에 묻어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데, 갔던 길 돌아 나오며 얽힌 줄타래를 푸노라면 속에서 열불이 난다. 수압을 견디지 못한 줄이 중간에서 터지거나 끊어져, 아예 작업을 중단하고 농기계수리센터로 달음박질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촉즉발의 짜증을 스스로 달래도 보지만, 함께 일하던 부부끼리 대판 입씨름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소한 말이나 행동에서 꼬투리를 잡고, 뜬금없는 화풀이를 서로에게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농약살포 때는, 평소 살가운 부부라도 말이나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아무리 칼로 물 베기라지만, 날선 말들의 메아리가, 여러 날 부부 사이에 찬바람 쌩쌩 부는 얼음골을 만들기 때문이다.

탱글탱글 커가는 감귤을, 대지(大地)의 뱃속에 품은 회임(懷妊)의 마을.

농약하랴 김매랴, 땀범벅 무지렁이처럼 흙에서 뒹굴지만, 수확이란 출산의 벅찬 꿈이 새록새록 자라나는 여름의 역설(逆說). 갑남을녀(甲男乙女) 농부들의 사람살이, 본래 이런 게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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